대왕암·암각화… 바위가 옛이야기 쏟아낸다 기사의 사진
신라 문무대왕의 비가 호국용이 돼 잠겼다는 전설을 품은 울산 동구의 대왕암이 푸른빛의 광대한 바다 위에 살아 움직이는 듯 떠 있다.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울산에는 오래 전 옛이야기를 전해주는 바위가 있다. 단군이 즉위했다는 기원전 2333년보다 훨씬 과거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암각화와 신라시대 설화를 들려주는 대왕암이다.

울산 울주군에 대곡천이 흐른다. 울주를 관통해 흐르다 울산 태화강에 합류되는 지천이다. 이리 굽고 저리 휘며 27㎞를 흐르는 동안 개울 옆에 절경과 역사, 문화를 풀어놓는다. 잘 알려진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와 천전리 각석(국보 147호)뿐 아니라 거북이 엎드려 있는 듯한 형상의 반구대, 공룡의 발자국 화석 등이 얘깃거리를 쏟아낸다.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의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발견됐다. 7000년전 선사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인근에 위치한 천전리 각석과 함께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세계문화유산 잠재목록에 등재됐다.

‘대곡천 암각화군’ 탐방은 대곡천변에 위치한 암각화박물관에서 시작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암각화박물관에서 대곡천을 따라 30분가량 하류로 걸어가면 만날 수 있다. 1.2㎞ 구간에는 물길이 휘도는 청량한 풍경이 펼쳐진다.

수직의 거대한 바위면 아래에 높이 3m, 폭 10m 규모의 암각화에는 동물과 인물, 도구 등 75종 200여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바위 절벽 왼쪽에는 고래가 무리 지어 유영하고 있다. 새끼를 등에 업은 듯한 귀신고래와 물을 내뿜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와 범고래, 작살을 맞은 고래를 볼 수 있고 거북, 상어, 물개, 물새도 있다. 바위 절벽 오른쪽으로는 호랑이, 사슴, 멧돼지 등 육지동물이 새겨졌고 군데군데 사람의 형상과 배·작살·부구(浮具) 등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하는 도구와 사냥 도구도 찾아볼 수 있다.

멀리서 망원경으로 볼 수밖에 없지만 당시 생활상을 한눈에 짐작해 볼 수 있다. 암각화는 볕이 사선으로 드는 오후 3∼4시쯤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암각화 상단이 처마처럼 튀어나온 것이 인상적이다. 관람대와 암각화 사이엔 대곡천이 흐른다.

반구산 끝자락이 대곡천과 만나는 지점에 수려한 풍광의 반구대가 자리한다. 고려 말 포은 정몽주 등이 찾아와 시를 남기고,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린 곳이다. 이곳은 암각화와 500m가량 떨어져 있다. 그런데 왜 ‘반구대 암각화’일까. 반구대는 조선시대 지역 최고의 명소였다. 반구대가 유명해지면서 조선 숙종 38년(1712년)에 반구서원이 들어서게 된다. 이듬해엔 최신기(1673∼1737)가 반구대 건너편에 집청정(集淸亭)을 지었다. 암각화가 발견됐을 당시 위치를 설명해 주기에는 반구대가 제격이었다.

반구대 암각화에서 대곡천을 따라 상류로 조금 올라가면 천전리 각석과 만난다. 1970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견됐다. 너비 9.5m, 높이 2.7m에 기하학적 문양과 사슴, 사람 등 모두 280여점의 표현물이 그려져 있다. 바위면 자체가 15도 정도 기울어져 있어 수천 년 동안 비바람을 견딜 수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구상에서 추상으로 건너온 선사인들의 문양은 다산을 염원한 흔적이다. 20여명의 화랑 이름과 신라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명문 등도 새겨져 있다. 법흥왕대에 두 차례 유람한 것을 기념하여 새긴 것으로 추정된다.

천전리 각석 맞은 편 평평한 바위에는 약 1억년 전 백악기 시대를 살았던 중대형(길이 5∼25m) 공룡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 모양을 들여다 보면 공룡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돌아다닌 흔적이다. 이 일대가 공룡의 생활공간이었다는 것이다.

울산 동구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대왕의 왕비가 호국용이 돼 잠겼다는 전설을 품은 바위다. 경주 앞바다에 있는 문무대왕릉보다 훨씬 크다. 뭍에서 대왕암까지는 대왕교로 불리는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를 건너 기암괴석의 끝자락에서 광대하게 펼쳐진 푸른빛의 바다를 보고 있으면 대자연이 주는 감동에 뭉클해진다. 일상의 스트레스나 고민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이 뻥 뚫린다.

대왕암에는 바닷바람이 거세다. 황토색 기암을 때리는 파도에 물보라가 일자 다양한 모양과 색깔을 띤 바위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주변 해안을 따라 늘어선 다양한 형태의 바위들은 조각공원을 방불케 한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 혹은 가족 여행지로 각광받을 만하다.

대왕암은 주변의 아름드리 해송, 동해안에 있는 등대 중 가장 오래된 울기등대 등과 함께 공원으로 조성했다. 울산12경에 드는 대왕암공원의 송림은 해금강에 버금가는 절경으로 꼽힌다.

대왕암에서 2㎞ 남짓한 해안 산책로를 따라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이 만드는 비경을 즐기며 걷다 보면 슬도(瑟島)에 이른다. 바위 곳곳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곰보섬이다.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 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린다고 해 얻은 이름이다. 무인 등대 앞 벤치에 앉아 파도 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슬도 입구에 최근 개장한 소리체험관도 들러보면 좋다.

울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