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링위에서도 밖에서도 전설이었던 사나이 기사의 사진
무하마드 알리의 평전 ‘더 그레이티스트’에는 알리에 대한 이런 평가가 적혀 있다. ‘알리는 미국인으로, 권투 선수로, 아무리 역경이 벅차고 아무리 적이 거대해도 기꺼이 그 역경에 저항한 정의의 구도자’였다고. 사진은 이라크 작가 자이나 엘 사이드가 요르단 암만에서 열고 있는 작품전에 내건 알리의 초상화다. 반전운동가로 활동한 이력을 반영한 것일까. 알리의 오른손에 앉은 하얀 비둘기 한 마리가 눈길을 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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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 남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남자는 이미 퇴물이었다. 20대 시절 종횡무진 링을 휘젓던 몸놀림은 둔해진 상태였고, 주먹은 예전만 못했다. 경기장을 찾은 기자들은 평했다. 그는 더 이상 최고의 선수가 아니라고, 오늘 열릴 경기에서 남자의 ‘종말’을 볼 거라고.

당시 서른두 살이던 남자의 이름은 한때 세계 헤비급 챔피언으로 군림한 무하마드 알리(1942∼2016). 그는 스물다섯 살 괴력의 복서 조지 포먼을 상대로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공이 울리자마자 경기는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전문가들은 알리가 포먼의 엄청난 주먹을 피하기 위해 경기를 소극적으로 풀어갈 것으로 내다봤지만, 알리는 먼저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공격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 알리는 경기 도중 포먼의 머리를 끌어안으면서 말했다. “더 세게 때려! 그 정도는 아프지 않아! 네가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수차례 강타를 얻어맞은 포먼은 결국 8라운드에 나가떨어졌다. 경기장 분위기는 어떻게 됐을까. ‘심판은 포먼이 정신을 차릴 때까지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링은 곧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시합이 끝났다. 무하마드 알리가 흉포한 젊은 챔피언 조지 포먼을 KO시켰다.’

이것은 알리의 1주기(6월 3일)를 앞두고 출간된 평전 ‘더 그레이티스트’에 실린 내용이다. 저자는 알리와 동시대를 살다간 흑인 작가 월터 딘 마이어스(1937∼2014). 그는 20세기 최고의 복서로 통하는 알리의 경기들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방식으로 알리의 삶을 되짚는다.

알리는 인종 차별이 심했던 미국 켄터키 루이빌 출신이다. 아버지는 ‘간판장이’였고 어머니는 가정부였다. 권투 선수는 으레 어린 시절 골목대장 한번쯤 한다는데, 알리는 아니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평범한 소년이었다. 이런 그가 권투에 입문한 계기는 독특했다.

때는 1954년, 열두 살이던 알리는 자전거를 타고 한 전시장에 놀러갔다가 자전거를 도둑맞았다. 너무 속상해 울음을 터뜨리는 알리에게 한 경찰관이 다가왔고, 둘은 이런 말을 주고받는다. “자전거 훔친 녀석을 찾아내기만 하면 때려 줄 거예요.” “누군가를 두들겨 팰 생각이라면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게 좋을 걸.” 알리는 복수심에 권투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많이 얻어맞았다. 질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프로 선수들이 이제껏 실전에서 본 적 없는 반사 신경과 신체 조정력’을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피드가 발군이었다.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60년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올림픽이 끝나자 프로로 전향했다. 복싱계 거물들을 때려눕혔고 챔피언이 됐다. 알리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책은 알리의 선수 이력을 전하면서 그 위에 20세기 미국의 현대사를 포갠다. 알리가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반전운동가로 활약한 업적이 대단한 만큼 어색하지 않은 구성이다.

그렇다고 알리의 삶을 마냥 미화하진 않는다. 알리는 수많은 동료들을 헐뜯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인들에게 켄터키 루이빌 출신의 젊은 권투 선수는 그 시절의 모든 나쁜 것을 대표했다’. 마틴 루터 킹으로 대표되는 비폭력적 흑인 민권운동에도 반기를 들었다. 그는 급진적인 선동가였다. 그 시절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권투 선수입니다. 눈에는 눈이라는 거래를 믿습니다. 나는 적을 용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내 강아지를 죽인다면 당신의 고양이는 내 눈에 안 띄게 하는 게 좋을 겁니다.”

하지만 무슨 말이든 직설적으로 내뱉으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는 알리에게 열광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새로운 유형의 흑인이 있을 수 있다면 알리야말로 이상적 인물이었다. 재능과 투지를 갖춘 알리는 흑인 청년들뿐 아니라 모든 젊은이의 대변자였다.’

평전의 제목이자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는 뜻의 ‘더 그레이티스트(The Greatest)’는 알리의 별명이다. 왜 그가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통하는지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렇다.

‘알리는 순전히 힘만으로 공격하는 전술을 구사하는 헤비급 시합에서도 지능과 훈련과 투지가 있다면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자신의 스타일과 속도와 발놀림을 통해 세상에 보여주었다. …용기는 두려움을 버리는 게 아니다. 용기란 두려움을 직면하는 의지, 평생 위험에 맞서는 의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을 반드시 해내는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알리의 명경기를 리얼하게 풀어낸 솜씨가 대단한 책이다. 하지만 그의 개인사 중 많은 부분이 빠져 있다. 세 번이나 실패한 결혼, 파킨슨병 판정을 받은 84년 이후의 삶 등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독자 중에는 반쪽짜리 평전이라고 깎아내릴 사람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그런 독자도 책장을 덮을 때쯤에는 이해할 것이다. 왜 알리가 위대한 인간인지.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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