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또 아이들이 교육실험 대상인가 기사의 사진
공무원 사회가 복잡하다. 흡사 2008년 노무현정부에서 이명박정부로 넘어가던 시기를 연상케 한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이 바뀌고 수년 동안 쟁점이 됐던 문제도 하루아침에 풀린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신기할 정도다. 9년 전 이런 상황을 경험했던 노련한 공무원들이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칠 리 만무하다.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말을 바꾸고 그간 추진하던 것과 반대되는 정책을 뒷받침하는 논리 개발에 머리를 싸매고 있다. 일부 노수(老手)의 얘기지만 씁쓰름하다. 이럴 때마다 나오는 말이 있다. 영혼 없는 공무원.

이 얘기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 나온다. “관료제는 개인감정(Impersonal)을 갖지 않는다. 관료의 권위가 영혼(Spirit) 없는 전문가와 감정(Heart) 없는 쾌락주의자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미국 현상학자 랠프 험멜은 더 직설적이다. ‘관료제의 경험’이란 저서에서 “공무원은 생김새가 인간과 비슷해도 머리와 영혼이 없는 존재”라고 혹평했다. 공무원의 영혼이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이명박정부 출범 직전인 2008년 1월 3일이다.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국정홍보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한 인수위원이 “마찰을 빚었던 취재 선진화 방안이 공무원들의 생각이냐, 아니면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것이냐”고 물었다. 이에 홍보처 간부들이 “공무원은 영혼 없는 사람” “대통령중심제 아래에서 어쩔 수 없는 일” “공화국은 바뀌어도 관료는 영원”으로 답변한 것이다.

9년5개월이 흘렀어도 공직사회의 이런 자세는 변함이 없다. 최근 일련의 교육부 대처가 좋은 사례다. 교육부는 지난 25일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업무를 보고하면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부담하겠다는 내용을 전격 공개했다. 박근혜정부 시절 중앙정부와 지자체, 시·도교육청 간 해묵은 논쟁이 일거에 사라진 것이다. 국고 부담을 그렇게 반대했던 교육부의 예전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다. 교육부의 전광석화 같은 기민성은 국정 역사 교과서 폐기 과정에서 여실히 빛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국정 교과서 폐기를 지시하자 교육부는 나흘 만에 검정 발행을 위한 교과서용 도서 고시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 업무지시 및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 결정에 따른 것이라는 변명성 자료와 함께 말이다. 1년7개월여 동안 벌어졌던 혼란에 대한 사과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당당하다.

문제는 학교 현장의 혼란이 이게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대입 제도가 다시 도마에 올라 있다. 교육부가 최근 국정기획자문위에 보고한 내용을 보면 수능과 내신, 대학별 고사 모두 어떻게 변화할지 불확실하다. 수능 절대평가, 고교 내신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등 파급효과가 큰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소문만 무성하다. 교육부가 개발을 거의 끝냈던 새 수능 개편안은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예측조차 불가능하다. 첫 실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중3과 고1 교실은 벌써 어수선하다고 한다. ‘교육 실험의 당사자가 왜 하필 우리냐’며 분노하면서 허탈해하고 있다. 우리나라 입시제도는 1945년 광복 후 큰 틀만 무려 18차례나 변경됐다. 평균 4년도 버티지 못했다. 정권마다 교육 실험의 반복이었다. ‘교육 실험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언제까지 정권과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희생양이 우리 아이들이어야 하는가. ‘실험쥐’ 신세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학생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백년대계(百年大計)는 바라지도 않는다.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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