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화가 황주리의 나의 기쁜 도시] 탄자니아, 잔지바르의 추억 기사의 사진
황주리 그림
내게 먼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라는 도시는 가보기 전에는 세상에 진짜 있는지도 몰랐던 상상 속 이름이었다.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나치를 피해 국경을 넘는 각자 다른 생각을 하며 같은 배를 타는 고독한 사람들에 관한, 언젠가 읽었던 매혹적인 소설의 제목,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매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지루한 고향 마을을 떠나 책 속에서 읽었던 먼 ‘잔지바르’로 떠나고 싶어 하는 소년의 기억이 늘 내 안에 남아있었다. 그에게 ‘잔지바르’는 상징적인 ‘자유’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면서 잔지바르라는 도시의 이름이 일정표에서 눈에 띄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천년 도시 잔지바르의 돌로 만들어진 ‘스톤 타운’은 아프리카, 인도, 아랍, 유럽 문화의 이질적인 요소들이 섞여 소위 비빔밥 문화가 정착된 독특한 도시다. 푸른 바다를 앞마당으로 두고 이국적인 이슬람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건축물들로 빼곡한 골목길들 속을 들어서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상상의 ‘잔지바르’ 속으로 끌려들어간다. 미로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길들은 세상의 모든 골목길을 사랑하는 내게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도시의 매력은 미로로 연결된 골목길에 있다는 걸, 그 안에서 아무리 길을 잃어도 행복하다는 걸 ‘잔지바르’는 또 한 번 느끼게 해주었다. 유서 깊은 낡은 분위기와 바다가 보이는 이국적인 카페들과 아름다운 가게들에 눈길이 팔려 하루를 몽땅 보내버려도 부족하다. 아름다운 잔지바르식 수공예 목걸이가 비싼 듯해 사지 않은 게 아직도 후회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색깔과 모양을 지닌 목걸이였다. 여행은 때로 그곳에서 산 물건들로 기억되기도 한다. 아니 사지 못한 그 물건들의 애틋한 기억으로 남기도 한다.

잔지바르는 ‘흑인의 해안’이라는 뜻이라 한다. 200년의 흑인 노예의 역사를 지닌 슬픈 도시가 바로 잔지바르다. 창문도 없는 감옥 같은 곳에서 수만 명의 노예가 갇혀있던 잔인한 노예시장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잔지바르는 동아프리카의 주요 노예무역항 중 하나였지만, 노예반대 지지자들이 캠페인을 벌였던 주요 기지이기도 했다. 다양한 외세의 지배를 받았던 잔지바르는 19세기 들어 유럽의 왕성한 선교활동으로 노예무역이 끝나고, 1964년 아랍의 지배를 마지막으로 영국 연방에서 독립해 탕가니카와 잔지바르의 연합국인 탄자니아 연합 공화국으로 탄생한다. 유럽인이 사랑하는 휴양도시 잔지바르, 동아프리카 노예 역사의 산증인 잔지바르, 유서 깊은 낡은 석조건물들과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스톤 타운, 그곳을 거닐면서 여행객은 한 번도 꾼 적 없는 낯선 꿈속에 빠져든다.

골목길을 돌아나가면 인도양의 작은 섬들과 나룻배들이 점점이 그림처럼 박혀 있는, 서민들의 삶의 터전인 바다를 만난다. 그곳에서 북쪽 끝, 구름과 석양과 별들이 쏟아지는 해변의 밤과 알록달록한 느낌의 골목길들이 기다리는, ‘능귀’ 해변을 찾는 것도 잔지바르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중 하나다. 잔지바르의 가난한 마을에서는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아무리 없이 살아도 공짜만 바라지 말고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자는 ‘스톱 헝거’ 운동이 펼쳐지고 있었다. 집에서 기른 채소나 과일, 닭 한 마리를 안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수북이 쌓인 그 물건들은 독거노인들이 기거하는 양로원으로 보내진다.

독거노인이 기거하는 시립양로원은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양로원의 노인들이 나름의 화려한 옷들을 입고 멀리서 온 손님을 맞아주었다. 아프리카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 보면 열악하기 그지없는데도, 그들이 학예회 같은 축제에 입고 나오는 옷은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워서 신기한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단 몇 벌의 화려한 옷을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에이즈 보균자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서 쫓겨나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 숲 속 깊숙이 살고 있는 한 소녀의 집을 방문했던 기억도 눈에 선하다. 날 때부터 에이즈에 감염된 소녀는 커서 뭐가 되고 싶은지 물으니 환한 얼굴로 의사가 되고 싶다 했다. 소녀의 가족이 차려낸 점심은 꼭 우리의 닭볶음 비슷한 맛으로 정말 일품이었다.

책에서 읽은 멀고 먼 아름다운 섬나라, 상징적 자유의 이름, 하지만 아픈 현실의 옆모습을 지닌 잔지바르를 떠나며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숨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고, 단지 떠나는 것만 의미가 있었다. 갑자기 그에게 떠나야 할 세 번째 이유가 떠올랐다. 그는 래리크(독일 북부의 항구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잔지바르를 생각했다. 먼 곳에 있는, 대양을 넘어있는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였다.”

황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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