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김병원 농협중앙회장 “농협 임직원 마음에 농심(農心) 되살릴 것” 기사의 사진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이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본사 집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농가소득 증대 방안을 설명하고 있다. 김 회장은 조합장과 임직원들이 실시간으로 농가소득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작업을 마무리했다고 소개했다.농협중앙회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왼손가락이 성한 게 없다. 쪼개진 후 다시 난 엄지손톱은 절반이 일그러졌고, 약지는 인대를 다쳐 잘 굽혀지지 않는다.

“꼴을 베어서 여물과 쇠죽을 만드는 게 (초등학교 때부터) 제 일이었는데 낫질, 작두질에 왼손이 성할 날이 없었어요.”

그래도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은 ‘농민의 애환이 배어 있다’며 자랑스럽게 자신의 왼손을 내보였다.

“농협인 가슴에 농심이 사라졌다”

두 망태에 꼴을 채우는 게 일과의 우선이었던 ‘흙수저’ 출신 소년은 50여년 뒤 230만 조합원과 30개가 넘은 자회사를 거느린 농협중앙회의 수장이 됐다. 삼수 끝에 당선, 지난해 3월 취임한 뒤 쉼 없이 현장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김 회장을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본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인터뷰 내내 ‘농심(農心)’을 강조했다. 1999년 처음 단위농협 조합장이 됐을 때 ‘농민은 갈수록 살기 어려워지고 있는데 농협은 직원들만을 위한 조직이 돼가고 있다’는 지적을 들었다. 가슴 아팠고, 그래서 농협을 바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변화의 출발점이 농협 임직원들의 마음에 농심을 되살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농협이 농업인들의 등골을 빼먹고 갑질하는 조직이라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누구 하나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인 농업인의 절박함을 농협마저 헤아리지 못한다면 농업인은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습니다.”

실제 직원들은 은행이나 다른 대형 유통업체 따라잡기에 급급했고, 갈수록 사람들도 농협을 그저 ‘은행’이나 ‘농산물을 파는 회사’로 생각하게 됐다. 김 회장은 이를 두고 “‘목표’만 있지 ‘목적’을 잊어버린 조직”이라고 표현했다. 취임 후 틈만 나면 정체성 찾기를 강조했다. 수익을 더 내기 위해 임직원들의 역량을 투입하는 게 아니라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경제적 약자들을 보호하고 사회적 역할에 집중하는 게 농협의 존재이유라고 본 것이다.

“농가소득 5000만원 시대 열겠다”

김 회장은 공급 과잉에 따른 쌀값 폭락으로 깊어지고 있는 농민의 시름을 덜어주는 일이 급선무라고 봤다. 실제 2015년 말 기준 농가 평균 소득은 3722만원으로 도시근로자 평균 소득 5780만원의 64% 수준에 불과했다. 그는 정체되고 있는 농업소득을 늘릴 수 있는 해법으로 생산비를 주목했다. 오르지 않는 농산물 가격을 어찌할 수 없다면 결국 꾸준히 오르는 생산비를 낮추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1년간 남해화학 등 자회사들의 서울 본사를 과감히 없애고 모두 현지로 내려가게 했습니다. 그렇게 절감된 비용으로 비료·농약 가격을 인하했습니다.”

실제 농협 계열사의 화학비료 등은 지난해 평균 17% 인하됐다. 농약과 사료 가격도 대량 구매 등을 통해 가격 인하를 유도했다. 이렇게 아낀 농업경영비가 취임 이후 1900억원 정도 된다.

하지만 ‘2020년 농가소득 5000만원’ 목표 달성은 혼자만 뛴다고 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임직원, 조합장과 머리를 맞댔다. 수차례 밤샘토론도 벌였다. 그때마다 왜 업무시간인 낮이 아니라 밤에 모이느냐는 불만도 터져나왔다.

“밤 11시부터 2시 사이는 용서와 이해가 되는 시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하고 소중한 분들의 마음을 그 시간을 이용해 훔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 회장은 조합장과 임직원 스스로 경영 판단을 할 수 있는 일도 함께 추진했다. 농가소득 현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또 전국 조합장들이 자신의 사무실 모니터를 통해 농가소득 변화를 수치로 매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작업도 벌였다. 시스템은 4개월 작업 끝에 6월 초 오픈한다. 10분만 들여다보면 농협의 경영 상황을 한눈에 알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생산비 절감에서 한발 더 나아가 올해에는 농가의 이전소득을 늘리는 데도 주력할 예정이다.

“농업인을 위해 기금을 출연해 금융상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영세 농민들에게 우대금리 형태로 기금이 지원되면 농민들은 연리 5% 정도의 금융상품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농지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는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농협이 발전시설 비용의 80%를 융자하고, 나머지 20%도 지역 농협에서 투자받을 수 있다.

“답은 현장에 있다”

김 회장은 당선 때 임기 4년 중 1년은 200만 농민 조합원들 곁인 현장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후 약속을 행동으로 실천해 왔다. 특히 피해를 입고 실의에 빠진 농민 소식을 들으면 만사 제쳐놓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산불, 가뭄, 우박 등 천재지변이 잇따랐던 지난달 김 회장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빴다.

“농협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곳은 언제, 어디나 달려갈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농협의 인력, 금융 등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농가 피해 복구를 지원하겠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장을 찾으면 위로로만 그치지 않았다. 계열사를 총동원해 다각적인 지원책을 내놓았다. 지난달 17일 충남 예산군 우박 피해 농가를 찾았을 때 김 회장은 보험 계열사를 통해 재해보험 피해조사 시 우박 피해 농가를 최우선으로 조사하고, 추정보험금의 50%를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 후 선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지시했다. 또 유통 자회사를 통해서는 피해 농작물 수확기 특판을 통한 판로 확보를, 금융 계열사를 통해서는 피해 농업인에 대한 신규대출 시 추가 우대금리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지난달 10일엔 강원도 강릉과 삼척 산불 피해 농가를 찾아서는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모은 성금을 화재로 집을 잃은 농업인에게 긴급 생계비 등으로 지급했다. 지난달 29일에는 강수량 부족 등 지속되는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충남 서산시 부석면 관내 농가를 방문한 후에는 최악의 봄 가뭄 극복을 위해 재해대책 무이자 자금 3000억원 지원 등 총력 지원을 약속했다.

“기업은 경쟁에 밀려서가 아니라 존재가치를 상실했을 때 쇠퇴합니다.” 김 회장은 굳어버린 낡은 관행들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농업인들을 위한 진정한 협동조합으로 거듭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매일 다짐한다.

대담=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