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문재인과 트럼프의 첫 회담 기사의 사진
걱정보다 기대가 커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잘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기대감이 커진 데는 최순실 사태 이후 7개월 넘게 막혔던 정상외교가 비로소 작동하는 것에 따른 반사효과도 있겠다. 워싱턴 싱크탱크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국에 진보정권이 들어선 데 대한 우려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시각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행정부 인사들이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사안들을 싱크탱크에 몸담고 있는 전직 관료나 학자들이 자유롭게 대변하는 워싱턴 문화를 감안하면 미국의 주류는 문 대통령 집권에 불편한 시각을 갖고 있다고 봐야 한다. 문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대선 전에 전격적으로 사드를 배치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 언론들은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달빛정책(Moonshine)’이라 부른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할 것이라는 뉘앙스다. 햇볕이든 달빛이든 북한에 유화적인 건 마찬가지라고 본다.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동해로 급파하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면서 으름장을 놓는 트럼프 행정부와, 남북대화와 교류를 추진하는 문 대통령이 충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백악관 브리핑에서도 한·미 간 대북정책 갈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를 묻는 미국 기자들의 질문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 대한 미 행정부의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조짐이 보인다. 먼저 문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하고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내놓는 등 단호한 대응을 보이자 백악관이 문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후문이다. 미국을 방문한 한국 측 인사들도 비슷한 평가를 전해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최근 사드 배치 절차 논란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 인사들은 한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 북한의 위협 앞에서 한·미가 갈등을 보일 경우 한·미동맹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도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미국이 갖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발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먼저 전화 통화를 한 데 이어 백악관에 특사를 파견,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는 등 한·미동맹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미국 측에 전달했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청와대의 첫 민정수석과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지만 한 번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해외 순방을 따라 나선 적이 없다. 문 대통령의 해외 출장은 2006년 에콰도르의 코레아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특사로 남미를 방문한 게 전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반미면 어때’하고 시작한 노 전 대통령이 미국의 요청에 이라크 파병을 결정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던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한·미 관계의 본질과 한계를 깊이 고뇌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청와대에 처음 합류할 때도 북·미 관계는 일촉즉발 상황이었다. 당시 부시 행정부 역시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있다’며 북폭이나 제한적 북한 공격설을 흘리고 있었다.

북한의 핵폭탄과 미사일 개발 수준이 그때보다 훨씬 진전된 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질을 감안하면 한반도 위기 상황은 그때보다 더 엄중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처음 주역으로 나서는 한·미 정상회담은 지뢰밭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으로부터 10분 강의를 들은 뒤 ‘한국이 한때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적 수준과 외교적 결례를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불쑥 사드 비용과 한·미 FTA 재협상 문제를 언급하면서 회담을 파국으로 끌고 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주문처럼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대한민국 지도자의 품격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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