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선더스 병장 기사의 사진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은 지난달 31일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에드워드 선더스 병장이 66년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알링턴국립묘지에 안장된다’는 공고를 홈페이지에 올렸다.

DPAA는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라는 구호로 유명한 전쟁포로·실종자합동사령부(JPAC)의 업무를 이어받아 2015년 새로 출범한 국방부 산하 조직이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태어난 선더스 병장은 미 육군 2사단 9보병연대 소속이었다. 그는 28세이던 1951년 강원도 횡성에서 포로로 잡혀 6개월 뒤인 8월 곡산 포로수용소에서 숨졌다.

횡성전투는 1·4후퇴 직후 서울 탈환의 고비가 된 중요한 싸움이다. 국군과 국제연합군에 밀려 한강 이남을 빼앗긴 중공군은 51년 2월 12일 주력부대를 대거 투입해 남한강 상류지역의 전략적 요충지인 횡성을 공격했다. 당시 이곳을 지키던 국군 8사단 800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바로 뒤에 있던 미군 2사단도 큰 타격을 받았다. 피해는 컸지만 중공군을 효과적으로 막아낸 횡성전투는 3개월 뒤 중공군의 기세를 꺾으며 ‘한국전쟁의 신화’로 불리는 용문산전투의 밑거름이 됐다.

한국전쟁 미군 실종자는 7800여명이다. 이중 5300여구가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군은 1990년대 초반 북한으로부터 400여구의 유해가 담긴 박스 208개를 인도받았다. 1996∼2005년에는 JPAC 직원이 북한에 들어가 유해 229구를 찾았다. 그리고는 2011년부터 실종자 가족의 DNA를 확보하기 위한 ‘한국전쟁 실종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단 한 명도 적진에 남겨두지 않는다’는 미군 유해 발굴 작업에서 한국전쟁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로 최악의 관계였던 지난해 9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05년 중단됐던 유해 발굴 재개를 논의하기 위한 민간인 사절단을 평양에 보냈을 정도다. 선더스 병장이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품에 안길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끈질긴 노력의 결과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현충탑에는 무명용사 10만3000여명의 위패와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전사자 유해 1100여구가 안치돼 있다.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국군은 13만1000여명이다. 그런데 실종자 위패가 10만개가 넘으니 안타깝다. 현충일을 앞두고 국가보훈처가 장관급으로 격상된다는 소식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될까.

글=고승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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