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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나미] 이젠,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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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수 감소로 동네 중학교가 문을 닫고 다른 교육기관으로 바뀐 후 갑자기 담장에 있던 아름드리 나무들의 목과 어깨가 모두 잘려나가고 밑동만 남았다. 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 숨을 멈추게 만들었던 장미관목의 길도 사라졌다. 도대체 무슨 공사를 하느라 그런지 유심히 보니 담장을 따라 조성된 낮은 화단 때문이었다. 기관장의 취향인 모양이었다. 몇 십년 키운 나무를 꼭 자르고 장미 대신 쇠창살 담장으로 만들어야 했는지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그 공간이 바뀌는 게 세상 이치라 하고 넘어가야 한다니! 오래된 나무 하나를 벨 때도 주정부나 그 지역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자연을 해치는 건물을 세우면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던 선진국과 비교하는 것도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우리가 선진국보다 못한 건 아닌데, 이런 전횡을 막을 법이나 시스템이 아쉬웠다.

나무와 숲은 미세먼지를 흡수하고, 온난화도 막으며, 바다와 강물로 가는 오염물질도 걸러낸다는 사실, 이제 웬만하면 모든 국민이 다 아는 사실 아닌가. 미세먼지가 많은지, 오존 농도는 어떤지, 내가 마시는 수돗물에 불순물은 없는지 모두 체크해 보면서 나무 베는 것에는 죄의식이 없다.

엄청난 양의 화학물질이 포함된 미세먼지를 한반도에 보내는 중국과 몽골, 오폐수를 버리고 유독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업들, 살처분 후에 나오는 침출수에는 무심했던 정부, 산을 깎아 분양도 안 되는 주택단지를 만드는 건설업자들. 분노할 대상은 사실 우리 주변에 많다. 평범한 우리도 무죄는 아니다. 프탈렌 등 화학물질 덩어리의 일회용 용기와 페트병들, 덥고 추운 걸 못 참아 마구 쓰는 에너지, 걸어도 될 곳에 굳이 자동차를 몰고 가면서 뿜어내는 이산화탄소, 먹지도 못할 음식을 욕심 내 나오는 쓰레기. 부끄러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그나마 한반도는 넉넉한 자연의 품이 우리 죄를 어느 정도 덮어주어서 건강이나 수명 같은 배부른 걱정 하고 있지만, 척박한 환경의 아프리카나 중동, 대양의 작은 섬나라에서는 오염과 온난화가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한다. 누리고 쓰는 것은 선진국인데 후유증은 후진국이 뒤집어쓰고 있다. 선진국은 깨끗한 물을 멀리서 공수해 오느라 다시 에너지를 쓰는데 후진국의 사막은 늘고 호수와 강은 계속 말라간다. 새로운 숲을 조성하는 것도 거의 후진국 몫이다.

어쩌면 요즘 빈발하는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을 향한 가난한 나라 출신 젊은이들의 테러도 이와 같은 환경의 불평등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싶다. 소외된 이들의 ‘외로운 늑대’ 심리라는 둥, 잘못된 종교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는 둥 말이 많지만 파괴된 공간에서 생존 그 자체가 불가능한 조국에 절망한 젊은이들의 비극이 진짜 근본적 이유는 아닌지. 자유롭고 아름다운 환경에서 예술과 문화를 즐기는 선진국과 달리 전쟁과 환경 재앙의 한가운데에서 죄 없이 다치고 병들어 죽어간다면 결국 남는 감정은 분노와 원한일 것이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기후협약을 지키지 않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폭주족 정치는 멈출 줄 모르고, 그나마 이민자들에게 포용적이었던 독일이나 프랑스도 테러리즘에 대한 반발로 더욱 자국 중심주의에 빠지고 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쓰면 자연스럽게 서양식 민주주의가 수입되고 자본주의로 풍요롭게 살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은 재스민 혁명의 실패와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 등으로 거짓으로 판명됐다. 정보의 세계화는 소비와 욕망만 부추기는 도구에 불과한 것일까?

물 없는 나라에 가면 샘을 파고, 나무 없는 나라에 가면 나무를 심는 훌륭한 한국 젊은이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기엔 파괴된 지구의 비극이 너무 처절하고 아프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녹지를 조성한 대한민국이니 환경 분야에서 만큼은 지구촌에서 진정한 리더가 될 자격이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 노아의 방주 같은 역할을 할 수는 없는지 어쩌면 황당하게 들리는 소망을 가져보게 된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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