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피플] 종이로 만든 내 세상… 자폐 종이공예 작가 박태현씨

[미션&피플] 종이로 만든 내 세상… 자폐 종이공예 작가 박태현씨 기사의 사진
박태현(자폐성장애 1급) 작가가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밀알복지재단 사무실에서 자신이 종이공예로 만든 작품들을 소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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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종이공예 작가는 자리에 앉자마자 바삐 손을 움직였다. 가위를 든 작가의 손은 거침이 없었다. 크고 작은 과자상자, 빈 페트(PET)병 등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재활용품들이 그의 가위질에 새로운 모양의 조각으로 재탄생했다. 여러 가지 색 테이프로 조각들을 붙여 팔 다리 몸통 등의 형체를 만들고 그 안에 휴지를 채워 넣자 마법처럼 만화 속 우주영웅 인형이 등장했다.

지난달 31일 서울 강남구 밤고개로 밀알복지재단(이사장 홍정길 목사)에서 만난 박태현(24·자폐성장애 1급)씨는 6년차 종이공예 작가다. 남들에겐 쓰레기 분리수거함에 들어갈 종이며 플라스틱들이 그의 손을 거치면 호빵맨, 슈퍼 그랑죠, 텔레토비 등 친근한 캐릭터 인형으로 거듭난다. 지금까지 제작한 작품 수가 300여점. 개인전과 단체전 등 전시회도 40여 차례 가졌다. 지난달 서울 인사동 ‘갤러리H’에서 진행한 발달장애인 작가들의 미술전 ‘인블라썸(in blossom)’에선 높이 2m가 넘는 대형 로봇 인형을 선보였다.

“팔 여기 있어. 이번엔 파랑색. 이마에선 연두색 레이저 나와.” 책상에서 작업하는 내내 박 작가는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대상은 자기 손에 쥐어진 작품들이었다. 어머니 김선화(52·서울 삼일교회) 집사는 “태현이에겐 공예작업이 곧 세상과의 소통”이라고 했다. 아들에게서 자폐성 장애를 발견한 건 네 살 되던 해였다.

“처음엔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이런 아이를 주셨나’ 싶었죠. 원망하는 마음이 컸지만 다 내려놓고 아이가 무엇에 행복해하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더니 ‘이 아이는 특별하단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더라고요.”

아들에게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건 색연필과 종이를 쥐어주면서부터였다. 김 집사는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끊임없이 괴성을 지르던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2∼3시간 동안 집중하는 걸 보고 눈을 의심했다”고 회상했다. 미술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던 박 작가는 7세 되던 해부터 어머니가 사준 로봇 장난감을 종이에 도면으로 그리고 오려 붙여 종이로봇 인형을 만들어냈다.

박 작가의 재능에 날개를 달아준 건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지원 프로그램이었다. 국내 장애인 예술교육은 대부분 장애를 완화하기 위한 치료의 일환으로 이뤄진다. 특히 성년기를 맞은 발달장애인의 경우 교육에서 소외돼 사회적 자립으로부터 멀어진 채 방치되기도 한다.

반면 박 작가는 밀알복지재단이 미술에 재능을 가진 발달장애인들을 위해 경기도 용인에 설립한 ‘샘물밀알의 집’에 입주해 작업공간, 미술교육, 사회재활 등을 지원받고 있다. 재단이 전문강사 미술교육, 아트상품 개발 등을 지원하기 위해 진행 중인 ‘인블라썸(in blossom)’ 프로젝트에도 선정돼 활동의 폭이 더욱 넓어졌다.

2015년부턴 장애인식개선을 위한 특강 강사로 전국 초·중·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있다. 김 집사는 “학생들이 처음엔 어눌한 말투 때문에 비웃다가도 함께 가위질을 하다보면 탄성을 지른다”면서 “특강을 통해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바뀌는 것을 볼 때면 참 감사하다”고 말했다.

“태현이가 공예에 집중하는 걸 볼 때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발달장애 작가들이 작품들을 통해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할 수 있도록 응원해주세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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