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반목의 한반도… '평화의 전령' 당신이 그립습니다

여해 강원용 목사 탄신 100주년

2017 반목의 한반도… '평화의 전령' 당신이 그립습니다 기사의 사진
강원용 목사는 역사의 격변기 속에서 '빈들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자처하며 시대를 일깨웠다. 강 목사의 탄신 100주년을 맞아 그의 삶과 정신이 재조명되고 있다. 여해와함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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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아니라 이성이, 폭력이 아니라 정신이, 주장이 아니라 대화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강원용 목사님이 오늘의 한국교회에 건네시는 말씀입니다. 대화하는 인간, 즉 호모 디알로구스(homo dialogus)는 강 목사님을 기리는 오늘의 경동교회와 한국교회가 추구해야 할 크리스천의 실존입니다.”

지난 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장충단로 경동교회 본당. 담임인 채수일 목사가 마이크에서 입을 떼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예배당을 가득 채운 성도들이 저마다 여해(如海) 강원용(1917∼2006) 목사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했다. 대화와 소통, 화해와 용서, 공생과 협치… 그가 한평생 역설한 평화의 가치들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강 목사가 1957년부터 30년간 담임을 맡은 경동교회는 이날 특별한 행사를 마련했다. 강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 프로그램인 ‘여해와 함께하는 경동교회’ 행사를 준비했는데, 거창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성도들은 친교실에서 점심으로 잔치국수를 나눠먹고 생일 떡에 초 100개를 꽂아 강 목사를 추억하며 생일축하 노래를 합창했다. 소박하고 조촐했지만 순서 하나하나엔 정성이 담겨 있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성가대 합창이 흐르는 가운데 본당 스크린에는 생전의 강 목사 모습이 비쳤다. 자연스럽게 그의 생애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신은 정치가요?” “아니요.” “당신은 사회운동가요?” “아니요”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나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요.”(‘빈들에서’, 강원용 지음)

강 목사는 그의 저서 ‘빈들에서’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역사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빈들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자처하며 시대를 일깨운 선각자였다. ‘사이’(between)와 ‘넘어’(beyond)가 공존하는 신앙을 견지하면서, 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합일(合一)되는 십자가 신앙을 실천한 목회자였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자 애썼고, 세대 간 대화와 연대의 틀을 닦는 데 매진했다. 말년에는 평화와 통일을 위해 마지막 남은 힘을 쏟아 부었다.

강 목사는 1917년 7월 함경남도 이원의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격화되는 가운데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해였다. 한반도는 나라 잃은 민족의 설움에 잠긴 땅이었다.

화전민의 소년 가장이었던 그의 일생일대 사건은 열다섯 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세례를 받은 일이었다. 훗날 그는 “나의 뿌리는 내 나이 열다섯에 처음 만난 그리스도의 사랑이고 살아오는 동안 그 뿌리는 더욱 깊어갔다”고 고백했다.

열여덟 살 때 북간도 용정에 있는 은진중학교에 입학한 건 그에게 큰 축복이었다. 인생의 스승으로 꼽는 장공 김재준(1901∼1987) 목사를 만난 것이다. 미국 유니온신학교 등으로 유학을 가 정통신학자인 폴 틸리히와 기독교 현실주의 윤리학의 대가인 라인홀드 니버 교수 등과 깊은 학문적 교제를 나눴다. 이들은 강 목사의 목회와 사회참여에 대한 신학·윤리적 정체성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불혹이었던 1957년부터 경동교회 담임을 맡았던 그는 목회와 더불어 ‘크리스챤아카데미’활동에 심혈을 기울였다. 경동교회가 ‘모이는 교회’였다면 크리스챤아카데미는 ‘흩어지는 교회’ 성격을 지녔다.

아울러 세계교회협의회(WCC)와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등을 통해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연합) 활동도 왕성하게 펼쳤다. 우리나라에서 ‘종교 간의 대화’에 물꼬를 튼 주인공이기도 하다. 대화를 빼면 강 목사를 설명하기 힘들다.

“‘대화의 철학’은 강 목사에게 있어 성육신 신학의 도구였다”고 박종화(경동교회) 원로목사는 말한다. 정치·경제·노동계 등 사회 주요 분야의 대화 모임을 주도하면서 소통과 공생, 나아가 ‘평화의 전령’으로 헌신했다.

‘사랑하는 그 품안에 살게 하신 성령님, 닫힌 마음 열게 하여 하나 되게 하시네, 화해 위한 그 행진에 동참하게 하시니, 만물들과 마음 모아 감사 찬양드립니다.’ 교회에서 진행된 기념행사의 피날레는 강 목사가 작사한 찬송가 합창이었다. 성도들의 입가에 그를 향한 그리움이 살며시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교회와 세상 사이서 활동하며 하나님 나라 가치 추구"

"항상 기독교 메시지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목회자였습니다. 사회와 교회 사이의 수평적 관계를 중시하면서도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과의 수직 관계를 강조하셨지요.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세상 너머 하나님 나라 가치를 추구하고자 굉장히 노력하신 분이었습니다."

강원용 목사에 대한 박종화(경동교회) 원로목사의 회고다. '사이'와 '너머'는 곧 이쪽과 저쪽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 사이를 넘어서서 역설적 통합의 길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설립된 대화문화아카데미의 철학이기도 하다. 이 단체의 전신은 강 목사가 1965년 설립한 '크리스챤아카데미'로 대화와 소통, 화해와 공생에 가치를 두고 있다.

박 목사는 8일 "독선과 불통, 갈등과 반목이 여전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강 목사님의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상생과 소통, 화해와 협치의 가치를 되새기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초대 유엔 인권대사를 지낸 박경서 동국대 석좌교수는 "강 목사의 설교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건 사회에 대한 예언자적 목소리였다"며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는 얘기밖에 없었던 시절, 그는 한국과 사회를 향해 복음을 선포했다"고 회고했다.

"가난한 성직자였고, 따뜻한 스승이었으며, 여성주의자의자 평화주의자였다."(신인령 전 이화여대 총장) "사람 없는 대지에 홀로 우뚝 서 잃어버린 민족의 북두를 가리키신 분이다."(시인 김지하) "여느 젊은이들보다 더 정열적이고 더 진취적이기 때문에 정말 영원한 청춘으로 남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았다"(장상 세계교회협의회 공동의장)는 강 목사에 대한 기억도 눈길을 끈다.

■제1회 여해상 시상/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클라인 목사·한송죽 전도사
평화와 인간화에 공헌한 단체·개인 영예


"83년간 한번도 상을 못타봤는데, 벼락같은 수상 소식에 너무 놀랐습니다. 강원용 목사님께서 생전에 제게 늘 보내주신 신뢰와 지지를 큰 상으로 알고 살아왔는데… 부끄럽고, 고맙습니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장충단로 경동교회(채수일 목사) 본당. 강원용 목사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 프로그램인 '여해와 함께하는 경동교회' 행사 도중 진행된 제1회 여해상 시상식에서 특별상을 받은 한송죽(83·여·사진 오른쪽) 전도사의 수상소감은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강 목사가 경동교회에서 시무하던 시절, 그는 25년간 부교역자로 묵묵히 교회와 성도들을 섬겼다. 당시 강 목사도 한 전도사의 고매하고 겸손한 인품에 감동했다고 한다.

여해상은 재단법인 '여해와함께'가 강 목사의 정신을 기려 사회·문화·종교 분야에서 평화와 인간화(성육신)에 공헌한 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올해 처음 제정한 상이다. 본 시상식은 9일 오후 3시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최된다.

제1회 여해상 본상 수상의 영예는 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이사장 이부영 전 의원·왼쪽)가 차지했다. 생전의 강 목사는 좌우 이념의 갈등을 넘어 민족 통합을 위해 헌신한 몽양을 지지하고 존경해왔다. 주최 측은 기념사업회가 몽양의 사상을 계승·발전하는 일에 힘써왔다고 시상 이유를 밝혔다.

한 전도사와 함께 특별상을 수상한 노베르트 한스 클라인(가운데) 목사는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의 설립·발전에 기여했다. 강 목사를 도와 아시아 지역 아카데미 운동의 산파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민주화 및 평화 운동에도 힘을 보탰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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