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영석] 대통령 사과, 독사과 아니다 기사의 사진
초대 내각 인사의 잡음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사과 방식도 판박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가 가장 빨랐다. 취임한 지 불과 3일 만이었다. 이동관 전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해 국민에게 걱정을 끼쳐 죄송스럽다”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는 11일이 걸렸다.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은 “저희 판단이 국민 정서와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정말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엔 취임 33일째 되던 날 허태열 전 비서실장이 나왔다.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점에 대해서 인사위원장으로서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대통령 사과가 아닌 대리 사과가 먼저였다. 물론 임명 주체인 대통령의 책임은 문구 어디에도 없었다.

대통령의 직접 사과는 측근 비리 또는 대형 정국 이슈가 터졌을 때 이뤄졌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1주일 만에 첫 사과를 했다. 미래창조과학부 신설 등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야당과의 갈등이 고조됐던 시기였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후 87일 뒤에 고개를 숙였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서 촉발된 광우병 파동으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 상태에 빠졌을 때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92일 뒤 장수천 의혹에 대해 사과했다.

문재인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취임 16일 만인 지난달 26일 임종석 비서실장이 나섰다. 임 실장은 “국민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다.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도 사연이 있다”고 했다.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리다. 이후 등장한 문 대통령은 사과 대신 양해를 선택했다. 그러면서도 “정치화됐다”며 야당을 걸었다. 빵 한 조각, 닭 한 마리에도 사연이 있겠지만 문 대통령이 5대 비리 관련 인사 배제 원칙을 어긴 것은 팩트다. 솔직하게 고개를 숙이고 국민과 국회를 설득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수석보좌관회의라는 간접 소통방식을 택한 것도 부적절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금씩 빠져 나가고 있는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신선한 인사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던져줬던 초심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들은 왜 대국민 사과에 인색할까. 야당에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리게 된다는 대결적 사고방식이 문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사과할 경우 이후 인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사과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취임 초기 높은 지지율에 취해 사과 대신 강공을 선택하기도 한다. 대통령의 직접 사과 이후 지지율이 하락했던 전례도 참고됐을 법하다.

그러나 지지율 하락은 사과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에서 원인을 찾는 게 맞다. 역대 대통령의 사과 내용을 보면 ‘그러나’라는 단어가 많다. 송구하다면서도 항변을 뒤에 붙인 형식이다. ‘만약’이라는 단어를 넣은 조건부 사과를 하기도 했다. 국민들로선 대통령이 진정으로 사과를 한 것인지 반박한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독(毒)사과였던 셈이다.

대통령의 사과가 진정성을 담보하려면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우선이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무오류성에 빠져선 안 된다. 대통령도 인간이다. 사과에 인색할 필요가 없다. 필요한 인재를 꼭 쓰고 싶다면 국민에게 백번 사과한들 어떠랴. 고개를 가장 많이 숙였던 노 전 대통령의 과거 사과 테이프를 한 번 돌려보라.

다음은 형식이다. 대리 사과는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이 또한 공개된 장소여야 한다. 총론에선 사과하고 각론에서 토를 다는 사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사과는 빠를수록 효과가 크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다 실패한 박근혜정부를 반면교사로 삼아라. 사과해야 할 시점에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게 포인트다. 야당에 반대 철회 명분을 주는 것도 필요하다. 그럼 대통령의 사과가 독사과가 아닌 약(藥)사과가 될 수 있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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