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우수 어린 눈망울의 길례언니 기사의 사진
천경자 ‘길례언니’. 46×34㎝. 1982. K옥션 제공
챙 넓은 모자를 쓴 여인이 촉촉한 눈망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커다란 눈동자에선 곧 눈물이 쏟아져 내릴 듯하다. 여인 주위에 활짝 핀 꽃들 때문일까? 나비들이 여인의 머리 위를 나풀나풀 날고 있다.

여인의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지면에는 얼굴 위주로 소개했지만, 여인은 커다란 안개꽃 다발을 들고 있다. 성장(盛粧)을 하고, 화사한 꽃다발까지 들었는데도 여인의 얼굴엔 슬픔이 가득 묻어 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이 1982년에 그린 ‘길례언니’다.

천 화백은 ‘길례언니’란 이름으로 두 점의 채색화를 남겼다. 다른 한 점은 1973년 작으로, 흰 모자를 쓴 여인이 턱을 괴고 역시 정면을 응시하는 그림이다. 두 그림 모두 여인과 꽃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천경자 인물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길례언니는 한때 실존인물로 알려지기도 했으나 화가가 상상의 세계에서 만들어낸 인물이다.

천 화백은 그림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많은 공력을 기울였던 작가다. 특히 채색화는 수십, 수백 번 색을 입혀가며 고치고, 또 고쳤다. 그는 인물화 외에도 풍경화, 동물그림 등을 남겼지만 대중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것은 인물화다. 화사한 장미꽃을 얹고 있는 여인에서부터 치렁치렁 뱀을 이고 있는 여인까지 천경자의 인물은 한결같이 우수 어린 표정이다. 굴곡 많은 삶을 살며 고독과 씨름해온 화가의 모습이 고스란히 투영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