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보수정당에 절망하는 이유 기사의 사진
한국 정치에서 보수의 축이 무너지고 있다. 조기 대선으로 정권을 잡은 진보의 축은 굳건해진 반면 보수는 애물 덩어리로 전락하고 있다. 아직도 자신을 보수나 중도 보수라 생각하는 사람이 국민의 과반에 달한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현재의 보수 정당(들)에서 희망을 보지 못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반성을 모른다. 둘째, 제 밥그릇만 챙긴다. 셋째, 비전이 안 보인다. 원래 보수는 사려 깊게 일을 처리하고, 열정보다는 책임을 중시하는 태도를 미덕으로 삼는다. 한데 공천 파동과 총선 패배,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 대선 참패를 겪으면서도 누구 하나 정치적 책임을 지는 사람도, 물으려는 사람도 없다. 과거에는 보수 정당이 위기 때마다 혁신의 몸부림을 하곤 했다. 사람도 바꾸고 정강도 바꾸었다. 지금은 시늉이나마 그런 모습조차 없다.

혁신이 없으니 당연히 기득권 챙기는 밥그릇싸움에만 열심이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는 데 책임 있는 사람들이 당권을 다시 잡으려고 혈안이다. 염치없는 일이다. 과거에는 초재선 의원들이 정풍운동도 하고, 당내 민주화를 주도하기도 했건만 어찌 된 일인지 지금은 변화를 위해 결기를 보이는 인물이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국회의원직을 즐기는 사람들로만 꽉 차 있는 것으로 비친다. 국회의원인지 회사원인지 모르겠다는 푸념이 그래서 나온다.

민주주의의 연륜이 깊은 나라의 보수 정당 역사를 보면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은 대동소이하다. 선거에 연거푸 패하거나 보수 정당의 존립 위기가 닥쳤을 때 그들은 두 가지를 반드시 했다. ‘노선의 현대화’ 그리고 ‘새로운 지도자 발굴’이었다. 1950년대 사회민주주의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 때 영국 보수당은 중도주의자 해럴드 맥밀런을 앞세워 ‘온정적 중도보수주의’를 내걸고 성장의 필요와 분배의 요구를 조화시키는 노선으로 집권했다. 반면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말까지 대부분 시기를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절, 절치부심하던 보수당은 소신과 결단력을 지닌 마거릿 대처를 내세워 ‘영국병 해소와 시장 활력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집권해 영국의 힘을 되찾는다. 노동당이 제3의 길로 토니 블레어를 앞세워 장기 집권한 90년대 이후 또 위기에 빠진 보수당은 데이비드 캐머런이라는 스마트한 청년 지도자를 앞세우고, 보수당판 ‘제3의 길’로 재집권에 성공해 오늘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점은 보수 정당의 원로 지도자들이 ‘당의 혁신’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서 당의 현대화와 새로운 지도자 발굴에 팔을 걷어붙이곤 했다는 점이다. 당에 새로운 물길을 터주면서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것이 원숙한 보수주의자들의 특별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인 것이다.

어떻게 우리 보수정당에는 이런 정치지도자 한 사람 볼 수 없을까. 오히려 최후의 일각까지도 알량한 힘을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노추의 정치인’들만 눈에 띌 뿐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보수정당 사람들이 믿는 구석이 딱 하나 있다. 현 정부가 실정하리라는 것, 그래서 그 반사이익이 곧 자신들에게 돌아오리라는 것이다. 과거 한국 정치가 이런 과정을 늘 반복해 왔고, 이번에도 다르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자신의 변화보다는 ‘손님 실수’를 기다리는 편이 빠르고, 그것이 가장 확실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보수정당 사람들을 만나보면 모두 이런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상대의 실패는 곧 나의 성공이라는 이런 네거티브 논리가 한국 정치의 무능과 퇴락을 가져온 요인이란 사실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이기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을 외면하고 반사이익만 기다리는 보수, 시대의 변화를 성찰하지도 이끌지도 못하는 보수는 수구 보수일 뿐이다. 그들은 과거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다. 그들은 역사의 개척자가 아니라 걸림돌이다.

요컨대 위기에 빠진 보수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면 두 가지의 부재를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 보수의 가치와 노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의 부재, 그리고 이를 상징할 새로운 인물의 부재가 그것이다. 새로운 노선은 조용히 책상 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끌벅적한 논쟁을 통해 정립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과연 한국의 보수가 시대를 헤쳐 나갈 ‘생각의 힘’이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노선을 표상할 새로운 인물들이 부상해야 한다. 아니, 목적의식적으로 키워내야 한다. 결국 정치의 궁극적인 상징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를 해낼 수 있다면 보수도 새로운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 절망하는 것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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