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史 복원, 길게 보고 가야…” 기사의 사진
5∼6세기 가야연맹의 최대판도로 그 세력이 지금의 호남 일부 지역까지 뻗쳐 있다(그래픽). ①경남 김해 대성동 금관가야 고분군. ②경남 함안 말이산 아라가야 고분군. ③경북 고령 지산동 대가야 고분군 전경. 문화재청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가야사 연구와 복원을 국정과제로 추진해 영호남의 벽을 허물겠다고 밝힌 후 가야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역사학계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며 다양한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가야는 기원전 1세기부터 6세기 중반까지 낙동강부터 섬진강 금강 상류까지 세를 뻗쳤다. 중앙집권 체제가 아니라 작은 나라들의 연맹 체제지만 지속 기간이나 영역에서 백제나 신라 못지않았다. 하지만 사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보니 고대사에서 외면돼 왔다. 특히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때문에 삼국시대라는 용어가 고착되면서 가야가 낄 여지는 없었다. 또 일본역사서 ‘일본서기’에 기록이 있긴 하지만 가라(加羅·가야) 7국을 왜(倭)가 정복했다는 임나일본부설 탓에 오랜 기간 한국 연구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다.

대체로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가야는 초기 금관가야, 후기 대가야가 연맹을 이끄는 6가야였다고 나온다. 하지만 학자들마다 12가야, 20가야, 30가야 등 연맹을 이루는 나라의 수를 다르게 보고 있다.

가야 유적은 영호남 17개 시·군에 넓게 분포돼 있다. 장수 진안 남원 광양 순천 등 호남 동부에도 가야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주로 영남 지역에서 대규모 발굴과 연구가 진행돼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관가야 유적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사적 제341호), 아라가야 유적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515호), 대가야 유적인 고령 지산동 고분군(사적 79호) 등이다.

가야사 복원 사업은 2000년 김대중 정부 때도 이뤄진 바 있다. 대성동 고분군을 비롯해 김해 지역 유적을 중심으로 지원이 이뤄졌으며,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문 대통령의 지시를 놓고 역사학계의 반응은 갈린다. 그동안 소외됐던 가야사 연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편이다. 그러나 정부 주도로 이뤄지다 보면 성과 우선주의 때문에 가야사 연구에 오히려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삼기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소장은 “문 대통령의 언급은 구체적 지시라기보다는 가야사 연구의 미흡한 상황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본다”며 “다만 최근 가야사를 놓고 행정이나 학계가 모두 과열된 것 같아 전반적인 컨트롤타워의 필요성이 대두된다”고 말했다. 가야사 권위자인 경상대 조영제 교수는 “가야사 복원은 크게 세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면서 “방치된 가야 유적 보존과 복원, 가야사의 학문적 복원 그리고 가야문화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라고 말했다. 경상남·북도, 김해시, 함안군, 고령군 등 영남 5개 지자체는 지난 2월 가야고분군 공동세계유산추진단을 발족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조 교수는 “가야사는 고고학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현재 유적의 상당수가 방치돼 있다”며 “하루빨리 유적에 대한 조사와 보존 조치에 나서야 한다. 이것은 행정이 학계와 함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지자체들이 정부 예산을 따내기 위해 앞다퉈 복원 사업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가 크다. 특히 지자체의 지원을 받은 연구자들이 그 지역을 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과장하는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다.

가야사의 또 다른 권위자인 신경철 전 부산대 명예교수는 “가야사 연구와 복원에 막대한 세금이 투입될 예정인데 지금과 같은 과열 양상을 보면 자칫 누더기가 될 것 같다”며 “10∼15년 정도 길게 보고 계획을 세워서 하나하나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한번 잘못 복원하면 나중에 회복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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