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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김진숙 <15·끝> 내 삶은 소나기처럼 부어주신 축복에 대한 고백

북한에서 남한으로, 다시 미국으로… 고난과 기적이 교차하며 성숙해져

[역경의 열매] 김진숙 <15·끝> 내 삶은 소나기처럼 부어주신 축복에 대한 고백 기사의 사진
막달라마리아교회 은퇴 송별회 때 선물로 받은 삽화. 홈리스 여성들로 가득한 배를 내가 물 위에서 끌고 가는 모습이다.
내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다시 미국으로 삶의 장을 옮겼다. 역경의 열매를 위해 내 인생을 다시 여행했다. 마음의 거리로 따지면 1만 마일도 넘는 세상을 되돌아온 것 같다. 다행히 지난 일과 감정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정리돼 있어 기억을 되살리기가 어렵지 않았다. 행복하고 기쁜 기억도 있었고 내 의식의 저편에 꽁꽁 숨어 있다가 문득 생생하게 다가와 날 슬프게 만드는 기억들이 많았다.

인생 첫 11년을 살았던 북한 땅을 떠올렸다. 내가 자란 황금정 네거리, 사포리, 선덕에도 가봤다. 별로 좋은 일이 없었다. 난 어머니와 함께 울었다. 아버지는 항상 화내고 부수고 때렸다. 그래도 아름다웠던 선덕 집 주변 풍광과 과수원을 떠올리니 미소가 절로 났다.

이어 1940년대 후반부터 60년대까지를 여행했다. 전쟁과 피난으로 배고프고 추운 홈리스의 삶이었다. 삼천리강산만 폐허가 된 게 아니었다. 그땐 사람들의 마음이 피폐했다. 전쟁이 끝나고 60년대는 가난과 싸워야 했다. 그 와중에 좋은 학교를 다니고 신학대를 졸업했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가며 치열하게 살았다. 이 시기 주님을 영접했다. 일생일대 사건이었다. 미국 유학도 밝은 기억이다. 나환자들을 돕고 교회를 건축하도록 힘을 보탠 일 등도 한줄기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내 언 가슴을 녹여주었다.

마지막으로 46년의 미국 생활을 돌아보았다. 매일 희비쌍곡선을 살았다. 기적과 고난이 언제나 교차했다. 그러면서 한 뼘씩 성숙했다. 학문적 성취와 개인적 영광도 맛봤다. 책을 여러 권 썼고 크고 작은 상을 20여 차례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았고 사역도 많이 했다. 하늘의 별같이 많은 형제와 자매, 자녀와 친구를 얻었다. 하지만 큰아들 형수를 잃은 상처는 녹아 없어지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품고 살아야할 고통일지 모른다.

이 상처를 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내 인생에 소나기 같은 축복을 쏟아 부어 주셨다. 내 삶은 그 축복에 관한 고백이다. 나와 동행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다. 미국에서의 삶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모든 일이 이루어졌다는 고백 외에는 할 말이 없다. 나의 80년은 한 손으로 몸과 마음의 병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주님의 손을 잡고 공부하며 일하고 홈리스들을 섬긴 역사의 삶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시, 은혜와 섭리 가운데서 이루어졌다.

인간의 뼈는 206개라고 한다. 뼈의 조직은 끊임없이 죽고 생기는데 7년에 한 번씩 몸 전체의 뼈가 새 것으로 바뀐다. 혈관의 길이는 12만㎞로 지구를 세 바퀴 도는 거리와 맞먹는다. 자동차를 만드는 데 1만3000여개 이상의 부품이 필요하다. 인간의 몸에는 자그마치 100조 개의 세포 조직이 있고 25조 개의 적혈구와 250조 개의 백혈구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섬세한 창조물이다.

기억을 되짚으면서 여러 번 놀랐다. 그 많은 추억을 어떻게 3파운드 밖에 안 되는 두뇌에 오랫동안 저장할 수 있었을까. 내 인생을 돌아보며 그 경이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나님이 빚으신 게 아니고선 도무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진실로 놀라운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정리=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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