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가 14일 국가수준 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없애도록 교육부에 사실상 지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 교육계가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안이다. 교육부는 즉각 수용하고 일부 학생만 추려 보는 표집평가 방식으로 바꿨다.

올해 학업성취도평가는 오는 20일로 예정돼 있었다. 불과 일주일을 앞두고 정책이 예고 없이 뒤집힌 것이다. 시험을 앞둔 학교 현장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새 정부에서도 학생 학부모 교사 등 학교 현장을 무시하고 정치권이 좌우하는 ‘교육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금융감독원 연수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학업성취도 평가 방식을 전수평가에서 표집평가로 변경하는 안을 교육부에 공식 제안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가 국정기획위에 이 문제를 제기했으며 시·도 간, 학교 간 등수 경쟁으로 왜곡돼 학업성취도 추이분석과 기초학력 지원을 위한 기초자료 수집이라는 원래 취지가 사라졌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일제고사 폐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박 대변인은 “(현재 학업성취도 평가 방식은) 협력교육이라는 문재인정부 지향점과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교육부는 즉각 수용했다. 오는 20일 시행되는 올해 학업성취도평가에선 대상 학생의 3%인 2만8646명만 시험을 보기로 했다. 나머지 인원은 시·도교육청 재량으로 넘겼다. 당초 93만5059명이 시험을 볼 예정이었다.

학업성취도평가는 중·고교생의 학력을 측정하기 위해 매년 실시하는 시험이다. 초·중등 학생이 교육과정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측정하려는 목적으로 개발됐다. 당초 초등학생도 보는 시험이었지만 진보교육계 반발 등으로 중3과 고2 대상으로 축소됐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재철 대변인은 “(시험 시행 일주일을 앞두고 폐지한 것은) 시험을 준비해온 교사와 학생을 무시한 것”이라며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고 1대 1 맞춤형 교육을 추진하겠다는 문 대통령 공약과도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외국어고교(외고)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폐지 논의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외고·자사고는 당초 설립목적과 어긋나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 왔다. 하지만 이 또한 학교 현장과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회장인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지난 13일 외고·자사고 폐지 방침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에 이어 경기도교육청도 폐지 논의를 본격화한 것이다. 외고·자사고는 진보교육감이 등장하면서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교육부가 폐지에 반대해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외고·자사고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폐지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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