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준동] 독이 든 성배 기사의 사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직은 ‘독이 든 성배(poisoned chalice·聖杯)’로 불린다. 영광스러운 자리처럼 보이지만 혹독한 대가가 따른다는 얘기다. 이 말은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나왔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당시 대표팀 감독이 월드컵 개막을 10개월 남기고 자진 사임 형식으로 경질되자 독일월드컵 공식 홈페이지가 이 소식을 전하면서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취임 1년2개월 만에 물러난 그는 “지구상의 어떤 감독도 짧은 기간에 팀을 만들 수는 없다”며 한국을 떠났다.

스포츠 감독 자리는 흔히 ‘파리 목숨’에 비유된다. 국민적 관심이 쏠린 축구대표팀 사령탑은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어떤 감독은 가슴에 사표를 품고 경기에 임했다고 한다. 이런저런 외풍에도 시달린다. 대표적인 사례가 조광래 감독이다. 조 감독은 허정무 감독에 이어 2010년 7월 바통을 이어받았다. 축구계 야당으로 불릴 정도로 주류와 거리가 멀었던 그의 임명은 의외였다.

임기 중반까지 ‘패스축구의 정석을 보여준다’는 등의 호평이 이어졌다. A매치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한 경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지역예선 레바논 원정에서 패하자 대한축구협회는 그를 전격적으로 경질했다. 성적이 표면적 이유였지만 사실상의 경질 이유는 협회 수뇌부와의 끊임없는 갈등이었다. 특정 감독을 후임으로 앉히기 위한 예정된 포석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협회가 염두에 둔 그 감독도 월드컵 본선 성적 부진으로 역시 성배 안에 든 독을 피해가지 못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도하 참사’로 결국 경질됐다. 역대 최장 기간(2년9개월) 대표팀을 이끌었지만 종국에는 중도하차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 감독 이후 9명의 감독이 대표팀을 거쳐 갔는데 평균 재임 기간은 1년3개월 남짓이다. 경질된 감독이 4명, 자진 사퇴한 감독이 2명이다. 경기는 감독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선수를 비롯해 협회, 팬들이 혼연일체돼야 좋은 성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감독 잔혹사가 이어지는 이런 환경에서 어떤 명장이 ‘독이 든 성배’를 기꺼이 마시려고 하겠는가.

김준동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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