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한미 정상회담과 정책 재조정 기사의 사진
북한은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무려 다섯 차례 미사일 시험발사를 감행하며 안보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는데, 한·미 양국은 정작 미사일 위협 대처를 위해 배치하기로 한 사드를 놓고 갈등을 표출하고, 중국은 배치 연기 결정에도 여전히 사드 완전 철수를 고집하며 한국을 옥죄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 상황이 이렇듯 난마처럼 얽혀 있는 와중에 문재인-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대면한다. 6월 말 개최될 한·미 정상회담에 국내외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상회담을 준비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담의 목적과 성격을 명확히 규정하고 이에 맞는 틀을 짜는 것이다. 그리고 그 틀 안에 채워질 콘텐츠를 준비하고, 소기의 목적 달성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회담의 모양새와 방미의 동선 등 세부계획(logistics)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우선 이번 회담의 목적은 정책의 ‘재조정(reset)’이 아니라 동맹의 ‘재확인(reassurance)’이 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회담 성격도 현안 타결보다는 외양에 더 신경써야 한다. 청와대 브리핑을 참고하면 정부의 방침이 ‘동맹 재확인’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지만, 문 대통령과 대통령특보의 최근 발언을 경청해보면 ‘정책 재조정’에도 강한 의욕을 보인다는 느낌이다. 재조정과 재확인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한·미 신 정부 사이에 신뢰가 확인되지 않은 현 시점에서는 난망한 일이다.

문재인정부는 박근혜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많은 부분 재조정하고 싶어 한다. 사드 배치 결정을 재조정해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대화의 문턱을 낮춰 남북관계 복원에도 속도를 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회담은 탄핵정국으로 실종됐던 정상외교를 복원하는 첫 걸음이고 문재인 외교의 데뷔 무대이다. 데뷔 무대로 ‘북한이 아니라’ 미국을 선택했다. 재조정은 필요하지만 한·미동맹이 여전히 대한민국 외교안보의 초석일 수밖에 없다는 문재인정부의 현실 인식이 반영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문재인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 여전히 의구심을 품고 있는 미국에 확고한 안보관과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해줘야 하는 것이 우선순위다. 동맹 재확인을 통해 신뢰가 형성되면 향후 정책 재조정의 기회는 여러 번 있을 테니 조금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 미국에도 ‘노’라고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금은 적기가 아니다.

재확인이 회담의 목적이라면 이에 부합하도록 콘텐츠를 채워야 한다. 양국 정부는 북한 도발에는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지만 북핵 문제는 압박과 함께 대화로 해결해야 한다는 기본 전제에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과 대화 재개의 조건, 사드 배치의 시기 및 비용, 방위비 분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에 대한 인식은 같지 않다. 사전 조율을 통해 인식을 공유하는 현안으로 회담 콘텐츠를 채우고, 그렇지 않은 사항은 원칙만 확인하고 실무선에서 후속 논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물론 예측불허의 트럼프가 엉뚱한 요구나 질문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조목조목 대꾸하지 말자. 문 대통령 특유의 여유 넘치는 표정으로 날선 공방은 피하고 편안하게 대화하는 모습만 보여준다면 이번 회담은 절반 이상의 성공일 것이다. 회담 내용과 분위기 못지않게 회담장 밖 동선과 메시지도 중요하다. 6월은 양국 모두에 호국보훈의 달이다. 지난 5월 버지니아주 미해병박물관에서 한국전쟁 3대 전투 중 하나였던 ‘장진호 전투’ 기념비가 67년 만에 제막됐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군이 치렀던 큰 희생 덕에 10만여명의 우리 피란민이 자유진영으로 철수할 수 있었다. 워싱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진호 전투 기념비를 방문해 한·미동맹이 수호하는 것은 자유, 평화, 민주, 인권 등 인류보편적 가치이고 이러한 가치가 문재인외교의 지향점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면 어떨까. 미국 조야의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저버린 가치에 목말라하고 있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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