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어디서나 내 병원’ 언제쯤 기사의 사진
병원을 옮길 때마다 번거로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전 병원에서의 진단 처방 검사 등 진료 기록을 일일이 종이 서류로 떼야 하고 CT·MRI 같은 영상은 CD에 담아 제출해야 한다. 문서 발급은 병원에 따라 몇 백원에서 몇 천원, 영상정보 CD 복사는 1만∼3만원을 수수료로 내야 한다.

얼마 전 고향의 노모가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목 갑상샘에 결절(혹)이 여러 개 발견됐고 폐에도 종양 같은 게 보이니 빨리 큰 병원 가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라는 통보를 받은 모양이다. 급히 연락받고 서울의 대학병원에 진료예약을 했다. 목 초음파와 폐CT 영상을 CD에 담아 오라고 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먼 거리의 검진병원을 다시 다녀오긴 쉽지 않은 일. 결국 5000원을 수수료로 입금하고 며칠을 기다려 우편으로 온 영상 CD를 갖고 상경해 재검에 임할 수 있었다.

생각해 봤다. 첫 번째 병원의 검진 기록이나 영상 정보를 두 번째 병원에서 곧바로 온라인 전송받았으면 이런 불편함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한글 문서나 고해상도 사진 파일도 이메일이나 카카오톡, 모바일메신저 등으로 몇 초 만에 척척 주고받는 초고속의 시대 아닌가. 응급상황에선 의료기관 간 전자 진료정보 교류가 더욱 절실할 수 있다. 갑자기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의 병력이나 약물 알레르기 등 과거 다른 병원 진료 기록을 의료진이 전자시스템에 접속해 한 번의 클릭으로 금방 파악할 수 있다면 보다 빨리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통신 기술력이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의 병원정보 교류 인프라는 의외로 한참 뒤처져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14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의료기관의 99%는 환자 기록을 종이 서류로 발급 또는 CD 복사 등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의료기관 간에 전자적으로 환자 기록을 송수신하는 비율은 1%에 불과하다.

이런 불편함으로 기존 진료 기록을 발급·제출하지 못하거나 혹은 복사된 CD의 품질이 낮아 CT·MRI 등을 다시 찍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에 따른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도 상당하다. 미국 일본 영국 호주 등은 2000년대 초부터 정부 주도로 전자 의료정보 공유 인프라를 구축했다.

늦었지만 우리나라도 환자가 원할 경우 의료기관 간 진료 정보를 전자적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한 의료법 개정안 시행령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해 21일부터 시행된다. 앞으로는 전국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다른 병원에서의 진료 기록을 신속히 볼 수 있게 된다. CT·MRI 등 영상정보를 일일이 CD에 담아 들고 다닐 필요도 없다. 한마디로 ‘전국 어디서나 내 병원’ 개념이 구현되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는 2009년부터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시범사업을 벌여 진료정보 교류 환자의 진료비는 비교류 그룹보다 13% 절감되고 85.9%의 높은 환자 만족도를 거뒀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문제는 지난 8년간 시범사업 참여기관이 거점병원 4곳과 협력 병·의원 155곳에 그쳤다는 점이다. 표준화된 전자진료기록전송시스템 구축에 따른 비용 부담과 그동안 문서·CD 발급을 통해 짭짤하게 챙겼던 부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한 병원들이 시큰둥하기 때문이다.

향후 6만개 넘는 국내 모든 의료기관(한방·치과 포함)으로 확대되려면 꽤 많은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병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는 게 관건이다. 수가 마련 등 적절한 보상책 논의가 필요하다. CT나 MRI 등 영상 장비의 표준화도 필요하다. 특히 작은 의료기관이 오래전 들여놓은 노후 장비는 해상도가 떨어져 큰 병원의 최첨단 장비로 전송되어도 정확한 판독이 힘들다. 비싼 비용을 내고 다시 찍어야 한다. 노후 장비 실태 조사도 필요하다. 해킹 등 정보 유출에 대비한 강력한 수준의 보안조치도 따라야 할 것이다. 벌써 ‘의료 빅브러더’(감시와 통제) 출현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민태원 사회부 차장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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