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판사 100명“梁 대법원장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입장표명해야” 기사의 사진
19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연수원에서 8년 만에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판사들이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고양=윤성호 기자
전국의 법관 대표들이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이들의 문책과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또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상설화해 대법원장에게 쏠린 사법행정권을 견제할 장치를 만들기로 결의했다.

19일 오전 9시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304호 제25강의실. 자주색 법복 대신 캐주얼 차림을 한 법관(法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오전 10시 전국 각급 법원을 대표해 판사 100명이 박수소리와 함께 헌정 사상 세 번째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를 시작했다. 회의는 10시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됐다.

법원행정처의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대회 축소 외압 의혹으로 촉발된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태를 논의했다. 회의 중 두 차례나 언론에 회의 진행상황을 브리핑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이 쏟아졌다.

법관대표들은 블랙리스트 추가 조사를 가장 먼저 의결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의 기획과 의사결정, 실행에 관여한 이들을 정확하게 규명하고 사법부 블랙리스트 존재 여부 등 여러 의혹을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추가 조사를 시행하고자 한다”고 결정했다. 추가 조사를 실시할 소위원회는 최한돈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8기)를 위원장으로 5명의 판사로 구성하고, 대법원장에게 조사 권한 위임을 요구할 예정이다.

법관회의 상설화도 의결했다. 현재는 법관회의를 상설화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법관회의 측은 대법관회의에 관련 규칙을 제정토록 건의할 방침이다. 법관회의가 상설화되면 판사 인사권과 대법관 제청권, 헌법재판관 지명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권한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을 가진 대법원장의 영향력을 축소해 판사의 독립적인 재판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대법관회의에서 이를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법관회의는 또 학술대회 축소 외압 의혹과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고영한 당시 법원행정처장 등 결정 과정에 있었던 사법행정 담당자들의 책임소재를 명확히 하고 문책 계획을 포함한 공식 입장을 밝히라고 양 대법원장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회의에 참여한 법관들은 행정처장과 차장이 주재한 주례회의와 실장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앞으로 사법행정 업무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했다.

법관회의가 열린 것은 2009년 신영철 당시 서울중앙지법원장의 재판 개입 파문 이후 8년 만이다. 이번 회의는 법원행정처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법관 독립 관련 세미나를 축소시키려 했다는 의혹과 함께 촉발됐다. 지난 3월 사법부 내 학술모임인 인권법연구회의 세미나에 법원행정처 차원의 외압이 있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고, 일부 진보 성향의 판사들을 뒷조사한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위촉을 받아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가 조사에 나섰지만 임 전 행정처 차장 등 윗선 개입 여부는 밝히지 못했다. 조사위는 판사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문서와 이메일이 저장됐다고 알려진 컴퓨터도 조사하지 못했다.

법관회의는 오는 7월 24일 2차 법관회의를 연다. 이날 의결하지 못한 안건과 의결한 안건을 실행할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다.

고양=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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