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신제윤 前 금융위원장 “공무원 증원은 하수의 정책… 노령화된 산업구조 개편해야” 기사의 사진
신제윤 전 금융위원장은 지난 1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령화된 산업구조를 고도화된 산업구조로 바꾸고,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경근 선임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하며 일자리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5년간 공공부문 81만개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11조2000억원 규모의 일자리 추가경정예산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야3당은 반대하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최저임금 1만원 인상도 논란거리다. 기획재정부 1차관을 지낸 신제윤(59) 전 금융위원장을 지난 14일 만나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를 들어봤다. 부동산대책 평가는 추후 보완했다.

-일자리 정책과 추경에 대해 평가한다면.

“문제의식은 제대로 잡은 것 같다. 저출산, 청년실업, 고령화 문제 해결을 위해 재정을 투입하는 것은 괜찮다. 저출산과 고령화 대처 문제는 언젠가 극복될 거다. 이들 부분은 나중에는 재정부담이 소멸된다. 그러나 공무원 일자리를 늘려서 청년들에게 주겠다는 것은 나쁜 정책이고 하수의 정책이다. 공무원 증원으로 인한 재정부담은 후손 대대로 영구히 부담해야 한다. 두 번째 더 중요한 것은 패기 있는 젊은이들을 공직으로 끌고 가려는 게 안타깝다. 젊은이들에게 단기간에 아픔을 줄여주는 진통제 역할밖에 안 된다. 소방관 등 꼭 필요한 분야가 있다면 다른 공무원 수를 줄여서 전체 균형을 맞춰야 한다. 공무원 일자리를 늘리는 문제만 빼면 추경은 마중물 역할을 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본다.”

-그러면 청년실업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노령화된 산업구조를 개편해 4차 산업혁명 등 고도화된 산업구조로 옮겨가야 한다. 구조조정으로 지역과 종업원들의 반발이 거세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단순 노동은 없어지겠지만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이 못하는 부분이 서비스다. 교육·보건·의료·문화 등은 이익집단이나 기득권에 막혀 개방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종합병원에 많은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예약한 뒤 한 달이나 걸리는 것은 개방되지 않은 결과다. 제가 처음 공무원 시작할 때 과자 수입 문제도 그랬다. 외국에서 수입한 과자를 어떻게 아이들에게 먹이느냐, 부잣집은 외국 과자만 먹느냐 등의 논란이 심했다. 결과적으로 과자 수입을 자유화했어도 아무 문제없었다. 지금 정부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같은 걸 해결해야 한다.”

-비정규직 제로 방침에 대해 기업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탄생 과정을 보면 정규직이 워낙 경직된 노사관계를 갖고 있다보니 이를 피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만들고, 비정규직이라도 고용을 늘리겠다는 거였다. 당장은 정부가 무서워서 정규직으로 전환하겠지만 그 다음에는 고용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청년실업 문제는 더 어렵게 된다. 경직된 노사관계를 완화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차별을 줄이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까지 올리겠다는 공약도 논란이다.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전체적으로 최저임금을 올리는 거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근로자뿐 아니라 고용주도 생각해줘야 한다. 편의점이나 치킨집 등 영세업체에서 1만원으로 갈 수 있는 여유가 있느냐 등 전체적으로 고려를 해야 한다. 문재인정부만이 할 수 있는 게 노사정 대타협이다. 과거 김대중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우리나라 산업구조를 개편한 것과 마찬가지로 문재인정부도 이런 쪽의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면 역사에 남을 정부가 될 것이다.”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고 미국은 기준금리를 또 올렸다. 14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부담인데.

“가계부채가 시스템 위기로 넘어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 이자상환부담능력을 보면 가계부채 70% 이상을 소득이 있는 4, 5분위 계층이 갖고 있다. 부동산이 세종시 등 몇 개 지역만 올랐기 때문에 자산가치 하락 가능성도 크지 않다. 노령층 대상의 역모기지 정책으로 유동성 보장도 잘돼 있다. 이 3가지 리스크를 고려할 때 가계부채 위험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지금 같은 증가 속도로 놔두는데 대해선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가계부채 대책은 소득·주택·금융정책과 미시적으로는 지역별 맞춤정책을 조화롭게 가는 토털아트(종합예술)가 필요하다. 우려되는 부분은 미국 금리가 올랐는데 신흥국의 자금흐름, 특히 트럼프 보호무역주의와 탄핵 가능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문제 등이 불거졌을 때다. 국제금융시장 불안정에 따른 우리나라 자금흐름은 주의를 갖고 워치해야 한다.”

-일부 지역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하향 조정하는 부동산대책이 발표됐다.

“LTV, DTI는 주택정책이 아니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한 정책이다. 특히 규제를 강화할 때는 더 신중해야 한다. 시장의 버블을 한꺼번에 터트리면 충격이 크다. 서서히 바람을 빼는 정책이 필요하다. 특정 과열 지역별로 규제하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주택정책은 소득·금융정책과 조화롭게 가야 하는데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조정능력을 높이 평가한다. 향후 주택정책은 대형·소형별 소유자, 거주자들로 패널을 구성해 대토론회를 거칠 필요가 있다.”

-수출이 호조를 보이면서 경기가 나아진다는 진단이 나오는데.

“주로 세계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속될 것인가는 회의적이다.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즉 저출산, 고령화, 노령화된 산업구조 등의 문제들 때문에 옛날과 같은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저성장이 아니라 지금 꾸려가는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느냐다. 성장보다 지속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가야 한다.”

-양극화가 심각하다. 문재인정부도 소득주도 성장을 강조한다. 양극화가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검증된 사실은 없다. 소득분배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저소득층의 소득을 보전해주는 정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가 근로장려세제 등을 통해 근로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은 좋은 정책이다. 우려되는 점은 행정력을 동원해 임금을 올려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라 하는 것이다. 고용주나 사업자의 여력을 감안하지 않고 올리게 되면 고용절벽을 가져와서 소득재분배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대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을 쌓아놓고 너무 투자·고용을 안 하는 것은 아닌지.

“기업은 어느 정부의 어떤 정책과 관계없이 수익이 된다고 하면 투자를 한다. 유보금을 갖고 있다는 것은 투자환경이 안 좋다는 뜻이다. 우리 산업구조의 문제로 보인다. 일본이 호황을 누리고 있을 때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사내 유보금이 많았다. 기업들이 유보금을 금융기관에 예치하고 있고 금융기관이 실물을 지원하면 투자가 되는 거니까 유보금이 많다고 해서 투자를 안 한다고 볼 수는 없다.”

-한 달여 지난 문재인정부에 대해 평가한다면.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제시했으면 한다. 적폐청산은 과거 지향적이다.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지, 그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어떻게 하겠다는 그림들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너무 국내 지향적인 정책 위주로 발표되고 있다. 통상이나 대외관계에 대한 그림이나 중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안 하고 있다. 국제문제는 자칫하면 파탄의 길로 갈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도 대외문제를 경시했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선심성 정책도 너무 많다. 중소기업도 경쟁력이 없으면 지원할 수 없다든지, 재래시장도 무한정 지원은 없다든지 하는 아픈 약도 같이 줘야 한다. 환영받는 정책, 감동적인 정책 위주로 가고 있는데 경제는 냉철하기 때문에 언젠가 쓴 약도 필요하다.”

-34년 공직생활을 하면서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나 아쉬운 점은.

“2008년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한 것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통해 금융규제의 글로벌 틀을 만든 것이 보람 있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때 금융부문 협상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점은 금융위원장 하면서 10년 안에 금융 부가가치를 10% 올리자는 ‘텐텐 전략’을 추진했는데 2014년 1월 신용정보유출 사건으로 규제가 강화되는 바람에 빅데이터를 이용한 금융분석이나 발전방안이 막혀버린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반성일 수도 있는데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젊은이들 중에 금융전문가들이 없고, 전문가를 기를 수 있는 제도도 안 돼 있다는 것을 느꼈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월스트리트2’ 영화 부제인 ‘Money never sleeps(돈은 잠들지 않는다)’다. 글로벌 위기에 관한 얘기인데 우리도 금융을 잘 몰라서 손해 본 경우가 많았다. 미국 월가에는 한국계 미국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학생들에게 이들의 첨단금융기법을 전수시키는 금융사관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다. 사회공익사업도 많이 할 생각이다.”

■ 신제윤은

금융정책과 국제금융 분야에서 34년간 공직생활을 했다. 휘문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행시 24회 수석으로 재무부에서 첫발을 내디뎠다.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재부 1차관을 거쳐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특유의 위트와 합리적 일처리로 기재부 시절 ‘닮고 싶은 상사’에 매년 꼽혔다.

국제적 감각과 대외 협상력이 뛰어나 관가의 대표적인 국제금융통으로 불렸다. 한·미 FTA 협상 당시 금융분과장으로 활약해 권오규 전 경제부총리로부터 ‘4명의 최고 협상가’ 중 한 명으로 꼽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미 통화스와프 성사를 주도했다. 강만수 전 기재부 장관이 다짜고짜 미 재무관료에게 ‘I need swap(스와프가 필요하다)’를 외치자 그는 ‘not wife swap(부인 맞교환은 아니고)’를 둘러댈 정도로 위트가 넘친다. 2010년 G20 정상회의 때는 G20 재무차관회의 의장을 맡아 코뮈니케 작성을 이끌었다. 그가 금융위로 옮겨올 때 기재부 노조는 “국제회의에서 ‘받아적는 나라’가 아닌 ‘의제를 주도하는 나라’로 만든 것을 기억하겠다”는 감사패를 전달했다. 2015년 3월 금융위원장 퇴임 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의장을 1년간 맡았고 지난 4월 국제금융협력대사로 임명됐다.

얼마 전 경제부총리 물망에도 올랐지만 그는 공직은 특별한 거 아니면 할 생각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만난 사람=이명희 논설위원 mheel@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