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악마의 속삭임을 경계하라 기사의 사진
박근혜정부의 실패 원인을 찾자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서 대통령을 포함한 정권의 폐쇄성을 꼽는 데 이견이 없다. 불통이고 독선이다. 나만의 세계에 갇힌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세력은 철옹성을 만들었다. 내편의 귓속말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멀게 했고, 결국은 실패로 귀결됐다. 나는 이를 악마의 속삭임이라고 감히 단언한다. 침몰 위기에 빠진 난파선의 쥐처럼 각자 저 살기에 바빴고, 정권은 구멍 난 둑처럼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동지의 썩은 살을 뜯어먹으며 목숨을 부지하려 한 정치인도 없지 않았다. 이전 정권들도 다소 차이는 있지만 유사한 과정을 거치면서 실패한 정부로 끝을 맺었다. 부끄럽고 불행한 권력의 말로였다.

지난 정부의 실패를 들먹인 것은 새 정부에서도 악마의 속삭임이 들리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나만의 원칙’에 빠져 폐쇄성을 자초했다면 새 정부는 ‘나만의 정의’에 매몰되고 있다. 다름과 차이가 존재하는 사회에 원칙과 정의의 독점은 결국 독선과 오만으로 흐른다. 원칙과 마찬가지로 정의 역시 독점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물론 명분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지옥으로 인도하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고 하듯이 그 명분엔 치명적 위험성이 있다. 옛말에 욕하면서 배운다고 했는데 딱 그대로다. 안경환 법무장관 후보자 인사검증을 둘러싼 일부의 어긋난 인식과 대응을 보면 한심하다 못해 안쓰럽다. 몰래 한 혼인신고는 외면하고 40년 전 판결문을 어떻게 입수했느냐며 음모론을 제기하는데 가당찮다. 정윤회 문건 파문 당시 ‘국기 문란’이라고 했던 지난 정부를 꼭 닮았다. 여기에 “언론이 잘못된 인선이라고 하는 걸 보니 제대로 된 인물”이라는 일부의 해괴한 논리를 보면 아연실색해진다. 나만의 정의다. 중국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과 뭐가 다른가. 과연 성공한 대통령, 성공한 정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집권 초엔 말이 많고, 거칠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역대 어느 정권 할 것 없이 그랬다. 개혁의 방향 못지않게 타이밍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정목표를 제시하고 국민적 역량을 한곳으로 모아야 할 땐 유효한 수단일 수 있다. 그러나 중구난방이면 곤란하다. 국익을 다퉈야 하는 외교 문제엔 더 그렇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의 ‘한·미 연합훈련 및 전략자산 축소’ 발언은 때와 장소 모두 상식에서 어긋난다. 한·미 정상회담을 코앞에 둔 시점에, 그것도 상대국 안방에서 했다. 미국 측도 ‘미스터 문의 개인 견해로 본다’고 일축했고, 우리 정부도 ‘개인적 아이디어’라고 뒤늦게 수습하려 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엎질러진 물은 닦으면 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그럴 수도 없다. ‘네 입안에 있는 말은 너의 노예지만 그 입 밖으로 나오면 너의 주인이 된다’고 경고했거늘.

이뿐 아니다. 거론하자면 입이 아플 정도다. 더욱이 점령군처럼 행세하면 결국은 국민과 멀어진다. 힘으로 다른 사람의 고개를 숙이게 할 수 있지만 마음까지 숙이게 할 수는 없다. 일부 언행은 적잖이 실망스럽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적폐세력으로 몰아갈 게 아니라 다름을 인정하고 절충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한꺼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마라. 윽박지르거나 조급해서 될 일은 아무것도 없다. ‘완장 찬 점령군이어선 안 된다’고 다짐했던 초심을 벌써 잊었나. 만에 하나 지지율에 근거한 것이라면 위험하다. 여론은 언제든 변하고, 더욱이 전 정부 기저효과마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목소리 크다고 옳거나 정의롭지 않다. 큰 목소리가 겉으로 보기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오히려 성공한 정부에 이르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크고, 듣기 좋은 소리일수록 더 경계해야 한다. 생각이 다른 목소리를 차단하기 때문이다. 눈물 없는 통곡처럼 더러는 정권창출에 기여한 자신의 공을 과시하고 전리품을 챙기려는 사욕의 목소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패를 자초하는 불통과 독선도 여기에서 시작된다. 심히 걱정스럽다. 박현동 논설위원 hdpak@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