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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남호철] 다크 투어리즘

[내일을 열며-남호철] 다크 투어리즘 기사의 사진
미국 뉴욕 월드트레이드센터 부지인 그라운드 제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 캄보디아 킬링필드 유적지, 일본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 모두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 명소로 꼽히는 곳이다.

우크라이나 북부의 프리피야트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26년 넘게 버려졌다가 다크 투어리즘에 힘입어 최근 연간 100만명가량이 찾는 세계적인 여행지가 됐다. 다크 투어리즘은 전쟁과 학살 등 참상이 벌어진 어두운 과거·역사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을 일컫는 말로 흔히 쓰인다. ‘블랙 투어리즘’이나 ‘네거티브 헤리티지’(Negative Heritage·부정적 문화유산)라고도 한다. 2008년 국립국어원은 다크 투어리즘을 대신할 우리말을 공모한 결과 ‘역사 교훈 여행’을 채택했다.

생소하게 느낄지 모르지만 외국에서는 이미 1966년에 등장한 개념이다. 이후 2000년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칼레도니언 대학 맬컴 폴리와 존 레넌 교수의 공저 제목에 쓰이면서 보편화됐다.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이 대량 학살당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지금 ‘오슈비엥침’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생체실험실·고문실·가스실·처형대·화장터 등과 함께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낡은 신발과 옷가지, 희생자들의 머리카락이 담긴 거대한 유리관, 기록영화 등은 나치의 잔악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그라운드 제로에도 ‘9·11 추모박물관’이 들어섰다. 참사 당시의 참혹했던 모습을 영상과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다.

아픈 과거를 여행상품으로 만들어 보여준다는 것에는 슬픔을 배로 만든다는 부정적 인식이 존재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두운 역사나 참사 현장을 여행지로 만드는 것은 비슷한 비극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후대에 알리려 함이다. 그래서 음산하거나 끔찍한 현장을 세계 각국의 여행객들이 끊임없이 찾는다.

사회적 차원에서 실패를 자산화하자는 실패학을 여행상품화한 것도 있다. 대표적인 곳이 일본 홋카이도 삿포로 동쪽의 내륙 산간도시 유바리시. 이 도시는 쇠락해가는 탄광도시에서 관광도시로 거듭나기 위해 시설 조성에 많은 공을 들였지만 과다한 투자가 화를 불렀다. 2006년 6월 360억엔의 빚을 지고 파산했다. 하지만 유바리시는 실패 경험을 여행상품으로 만드는 역발상을 했다. 도시의 몰락 과정을 소개하는 ‘유바리 다큐멘터리 투어’를 만들어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다크 투어리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48년 양민 수만명이 희생된 4·3사건의 실상을 알려주는 제주4·3평화공원, 6·25 때 북한·중공군 포로를 가두기 위해 설치된 거제포로수용소,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를 추모하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일제 만행을 재현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등을 찾는 사람이 갈수록 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는 지난 4월 29일부터 5월 14일까지 ‘봄 여행주간’에 강원도, 춘천시, 화천군, 양구군, 제7사단과 공동으로 ‘비무장지대(DMZ) 평화관광 상품’을 내놓기도 했다. 대전시는 수많은 애국지사와 양민이 학살된 옛 대전형무소의 역사적 가치를 살려 ‘역사 교육장소’로 만들기로 하는 등 각 지방자치단체들도 다크 투어리즘 자원 개발에 적극적이다.

비극의 현장은 스토리를 갖춘 자원이자 살아 있는 교육의 장이다. 사람들의 발걸음과 공감이 여행지로 만들어가는 셈이다. 다만 차별화된 콘텐츠가 필요하다. 다른 곳에선 보거나 경험할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그 해답을 역발상에서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풍부한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작업도 병행돼야 한다. 특이하고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스토리가 없이는 발걸음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했다.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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