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청년] “세상을 선하게 디자인하고 싶어요”

1급 지체장애 딛고 웹디자이너·작가 김예솔

[예수청년] “세상을 선하게 디자인하고 싶어요” 기사의 사진
김예솔씨가 지난 15일 서울 목동의 한 공원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활짝 웃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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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고난이 불쑥 찾아오고 그 순간을 지나올 때마다 내 의지가 아닌 다른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지쳐서 쓰러져갈 때마다 누군가가 든든하게 절 붙들고 있는 것 같았죠. 그게 하나님이셨어요.”

휠체어에 앉은 김예솔(29·지체장애 1급)씨의 목소리엔 에너지가 넘쳤다.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 세상을 바꾸는 디자인의 힘을 설명할 땐 디자인 전문가와 마주 앉아 한 편의 강의를 듣는 듯했다.

지난 15일 서울 양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일곱 살이던 1994년 급성 횡단성 척수염을 앓아 하반신 감각을 다 잃었다. 평범하고 호기심 많던 소녀의 눈높이는 하루아침에 허리높이로 내려앉았다. 김씨는 “엄마 따라 미용실에 갔던 쾌청한 날, ‘장애인의 날’이었던 4월 20일에 장애인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심한 척추측만증에 시달렸던 중학교 3학년 시절을 꼽았다. 반듯한 허리를 회복하기 위해 수술을 결심하고 아버지와 함께 진찰을 받으러 간 병원에서 그는 충격적인 진단을 들어야 했다.

“수술하다 죽을 확률이 큰데 뭐 하러 수술을 시킵니까. 이런 사회에 도움이 안 될 사람을 수술시켜놓은들, 운 좋게 그 수술이 잘된들 무슨 소용입니까.”

가슴에 비수로 꽂힌 말이었다. 하지만 절망에 머물지 않았다. 한 달여간 전국의 병원 사이트, 의학 관련 TV 프로그램을 뒤져 우리나라에 척추측만증 수술의 세계적 권위자가 있다는 걸 알아냈다. 자신의 병력을 상세히 적은 이메일을 보내고 진료를 받은 뒤 수술날짜를 잡기까지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됐다. 수술도 성공적이었다. 김씨는 “성공적인 수술 경과보다 더 큰 수확이 있었다”며 “눈앞의 한계점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할 용기만 있다면 조금 늦어지더라도 결국 뭐든지 이뤄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했다.

장애를 얻고 나서 모든 일에 적당히 임해왔던 김씨에게 뚜렷한 목표의식이 생기고 실천에 옮기는 의지가 생겼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입시미술과 수능준비에 한창이던 고3시절 ‘문화 디자인’에 대한 책을 접한 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환경과 시설을 어떻게 디자인하는지에 따라 자신이 휠체어를 타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사람들의 시선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김씨는 2007년 서울대 미대 디자인학부에 장애인 특별전형이 아닌 일반 수시전형으로 당당히 합격했다. 그의 합격 소식은 장애인이란 시선을 걷어내고 비장애인 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실력을 입증한 사례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김씨는 ‘장애인’이라는 꼬리표를 잊게 할 만한 여정을 걸어왔다. 한미 대학생 인턴십, 유럽과 중국 배낭여행, 베트남 단기선교, 장애인 청년들과의 라오스 연수 등 해외에서의 경험 쌓기에 주저함 없이 도전했다. 사회인으로서도 장애인 특별 채용이 아닌 대졸 신입사원 공개 채용을 거쳐 KT에 입사해 7년째 웹디자이너로 근무 중이다.

김씨는 “이 모든 과정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알리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3년 전 전북 익산의 작은 마을엔 장애인 소녀가 휠체어를 타고 예배를 드리러 갈 수 있는 교회가 없었다. 경사로가 있어야 할 자리엔 시멘트 계단과 울퉁불퉁한 자갈밭뿐이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가만히 두지 않았다.

“제겐 목요일이 곧 주일이었어요. 개척교회에서 사역하시던 한 전도사님이 매주 목요일마다 절 찾아와 1시간씩 함께 예배를 드렸죠. 일곱 살 때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 주도 빠짐없이 말예요. 그 헌신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줬습니다.”

최근엔 자신의 삶과 신앙을 담아낸 책 ‘오늘 하루만 더 긍정’(마음지기)을 출간해 작가로서의 도전을 이뤄내기도 했다. 김씨는 다음 달 스웨덴으로의 출국을 앞두고 있다. 산업디자인 석사과정을 이수하는 새로운 도전이다. 직장인으로서 안정기에 접어들 수 있는 시기에 내린 결정에 대해 배경을 물었다.

“회사생활을 통해 사회인으로서의 관계, 장애인으로서의 웹과 모바일 환경에 대한 접근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삶보다 디자이너로서 추구해야 할 것, 하나님께서 보시기 원하시는 것을 생각해보게 됐어요. 세상을 선하게 변화시킬 디자이너로서 한 계단 더 올라 돌아올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글=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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