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하태정] 국방연구개발도 민간투자다 기사의 사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한·중 사드(THAAD) 갈등,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시도, 미국의 보호주의 천명 등 어느 때보다 우리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부터 국방과학연구소를 중심으로 국방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해 왔다. 그 결과 현무 유도탄, K2 전차 등 주력 무기체계 281종이 국내 개발로 전력화됐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우수한 국방과학기술력도 축적돼 일부 분야에서는 이미 방산 선진국을 앞서 있다. 하지만 국방연구개발은 지금까지 대북전력 열세 극복과 주변국 위협 대응을 위한 군의 조기 전력화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다 보니 국방연구개발의 역할도 국방 분야로만 한정돼 국가경쟁력의 큰 틀에서 투입-산출-성과-재투자의 지속가능한 선순환 고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는 국방연구개발비가 국방 영역을 넘어 민간 부문까지 파급되는 투자 개념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국방기술이 민간 부문에 미친 효과는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다.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의 암호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기여를 한 앨런 튜링의 암호해독기 봄베는 현대 컴퓨터의 모태다. 인터넷은 미 고등연구계획국(현 DARPA)이 개발한 알파넷에서 비롯됐고, 이외에도 전자레인지, 내비게이션, 로봇청소기 등 다양한 국방기술이 생활 곳곳에서 활용되고 있다. 국내는 어떨까. 최근 민군기술협력이 국방기술의 민간 이전까지 아우르도록 민군기술협력사업 촉진법이 개정됐고, 국방과학연구소에 민군협력진흥원을 설치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방위사업청 등 관련 부처의 법·제도적 뒷받침으로 국방기술의 민간 이전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 결과 야간에 적을 식별하기 위해 개발된 적외선 검출기술이 스마트폰용 열화상 카메라에 적용됐고, 어뢰용 음향센서기술은 반도체 분야 비파괴 검사장치의 핵심기술로 상용화되는 등 성공 사례가 눈에 띄고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10년 이후 6년간 국방기술 이전이 국가경제에 미친 효과는 방산수출을 포함해 생산 9조4000억원, 고용 4만6000명, 소득 1조3000억원이며, 전후방 연관 산업에 대한 산업 승수효과도 2.64로 2013년의 전 산업 1.84, 제조업 2.04에 비해 월등히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세계 최고의 국방기술을 자랑하는 미국과 비교해서도 손색없을 정도이며 같은 기간 국방연구개발투자 규모가 13조4000억원인 것을 감안하면 국방기술 이전에 따른 경제적 과실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국방연구개발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할 때다. 경제는 민간이, 안보는 군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와 접근을 바꿔야 한다. 소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주체와 정보 간 연결과 융합이 국방연구개발 영역에서도 확산돼야 한다. 우수한 연구인력과 기술정보, 연구개발 인프라가 민과 군의 경계를 넘나들고 융합돼 새로운 국방연구개발 생태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진정한 자주국방은 지속가능성이 담보될 때라야 의미를 갖는다. 과감한 개방과 혁신으로 국가경쟁력이라는 큰 틀에서 지속적인 국방연구개발 투자가 진행돼야 한다. 그것이 자주국방과 경제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비책이 될 수 있다.

하태정 과학기술정책硏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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