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기꺼이 그늘이 되어주는 나무 기사의 사진
손장섭 ‘반송(盤松)’, 캔버스에 아크릴릭. 학고재갤러리
타는 듯한 햇살이 맹위를 떨치는 요즘 나무그늘만큼 반가운 게 없다. 그늘을 넉넉하게 만들어주는 반송(盤松)이야말로 더욱 고마운 존재다. 대부분의 소나무가 수직으로 높이 자라는 것과 달리 반송은 가지가 옆으로 넓게 퍼지는 것이 특징이다. 둥근 우산 모양의 소나무를 화폭이 꽉 차도록 그린 작가는 손장섭(76)이다. 전남 완도군 고금도에서 태어난 손장섭은 역사화를 그리는 틈틈이 나무와 자연풍경을 그려 왔다. ‘나무화가’로 불릴 정도로 전국을 순례하며 수백년 된 고목들을 끈질기게 형상화했다.

이 땅 곳곳에서 만난 노목과 거목, 희귀목은 작가로 하여금 저절로 붓을 들게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한 나무가 아니라 민중의 기쁨과 슬픔, 희열과 고통을 말없이 지켜봐온 존재이다. 겨레의 삶과 역사를 굽이굽이 품고, 간직해온 존재들인 것이다.

손장섭이 대형 캔버스에 그린 ‘반송’은 여러 개의 줄기가 마치 지면에 닿을 듯 곡선으로 드리워져 고고한 품위를 뽐낸다. 무성했던 초록잎들은 세월의 두께를 이기지 못하고 듬성듬성해졌지만 튼실한 몸통과 사방으로 힘차게 뻗어나간 줄기들은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작가는 흰색과 푸른색을 섞어 무심한 하늘을 그리고, 나무등걸과 가지는 물감을 두툼하게 겹쳐올리며 고목을 장엄하게 표현했다. 숱한 세월의 풍상 속에서도 그 자리를 지키며, 기꺼이 그늘이 되어준 나무. 그 침묵의 초상은 곧 겨레의 초상이요, 민중의 초상이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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