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미래 전문가는 호모 디페랑스 기사의 사진
전문가란 무언가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만 다른 분야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미국의 작가 앰브로즈 비어스의 말이다. 깊이 있는 전문성도 좋지만 전문성이 심화될수록 전문성의 함정이나 덫에 걸려 다른 전문성을 볼 수 없는 안타까운 처지가 된다는 말이다. 전문가는 자기 분야는 물론 다른 전문 분야와 접목해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색다른 전문성을 부단히 창조하는 새로운 전문가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전문가의 미래도 새롭게 조명돼야 한다.

미래의 전문가는 지금까지 전문가와 무엇이 달라야 하는가. 대부분의 전문가가 지니고 있는 전문성을 인공지능(AI)이 대체할 경우 전문가는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통찰력으로 무장해 탁월한 지혜를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초연결 시대, 사람과 사람은 물론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연결되는 시대에 분야별 전문가는 다른 분야 전문가와 튼실한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하고 융합을 실천하는 전문가로 변신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분야의 전문성만 고수해선 진정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기 어려워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 전문성을 새로운 전문성으로 부단히 신장시키고 개발하는 창조적 폐기학습(unlearning)이 필요하다. 새로운 분야를 이해하려는 학습(learning)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생각을 잉태하고 색다른 창의성을 발휘하기 위해선 고정관념과 습관적으로 믿고 있는 상식을 과감하게 버리는 노력이 중요하다.

“전문성과 경험이 깊어질수록 세상을 보는 특정한 방식에 매몰된다.” 미국 텍사스주 라이스대 에릭 데인 교수의 말이다. 전문가가 세상을 본다는 것은 자신이 쌓은 전문성과 경험적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는 의미다. 결국 다른 전문가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색맹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된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는 기꺼이 다른 전문가와 연결해서 협업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며, 융합해서 창조를 이끌어가려는 남다른 의지와 실천력을 지녀야 한다. “위대한 아이디어는 레스토랑의 회전문에서 탄생한다”는 카뮈의 말은 서로 다른 전문가가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전문성이 융합될 때 새로운 가능성이 탄생된다는 말이다.

전문가는 나와 다른 전문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간주하고 그 차이 속에서 위대한 가능성의 싹이 자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 전문가와 전문가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주목하고 이질적 전문성을 융합, 색다른 전문성을 창조하는 전문가를 ‘사이 전문가’(호모 디페랑스·Homo Differance)라고 한다. ‘디페랑스’는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가 영어의 ‘차이(difference)’로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차이를 시간적으로뿐만 아니라 공간적으로 연기해놓자는 의미로 ‘차연’ 또는 ‘차이(差移)’라는 개념으로 새롭게 창조된 개념이다. 양지와 음지, 남과 여,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높이와 깊이, 바닥과 정상, 희망과 절망, 걸림돌과 디딤돌, 흑과 백, 어둠과 밝음, 배경과 전경 사이를 넘나들며 색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는 전문가가 바로 사이 전문가다.

지금 우리 사회를 아프게 만드는 장본인은 네 가지 분야의 전문가가 득세하기 때문이다. 틀에 박힌 방식대로 일하면서 습관과 관성의 늪에 빠진 멍청한 전문가, 자기 분야만 파고들다 매몰된 답답한 전문가, 전문가 행세를 하지만 사실은 무늬만 전문가, 가장 심각한 문제의 전문가는 머리는 좋지만 가슴이 따뜻하지 않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모르는 밥맛없는 전문가다. 이런 전문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무한 가능성의 텃밭이자 상상력의 보고인 사이를 오가며 새로운 지식을 융합해내는 사이 전문가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할 미래의 전문가가 아닐 수 없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다. 그 섬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이자 두 사람이 만나 다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융합적 지식창조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있다가 사이를 두고 경계에 있는 양편의 입장 차이를 존중하고 이해하지 못할 경우 비판의 빵이 아니라 비난의 화살이 날아들 수 있다. 박덕규 시인의 ‘사이’가 바로 그런 시다.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사람과 사람 사이, 전문가와 전문가 사이,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를 존중해줄 때 우리는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으며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그대 길을 아는가? 길은 언덕과 물 사이에 있다”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나오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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