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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노석철] 원전 폐기가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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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보여준 행보는 매일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정농단의 공범으로 치부되던 자유한국당에 취임 첫날 찾아가 손을 내밀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청와대 앞길을 개방하는 등 혹시 짜인 각본이라고 해도 훈훈했다. ‘이렇게 쉬운 일을 과거엔 왜 보기 힘들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오죽 모질었으면 지극히 일상적인 것에 감동하게 될까’ 만감이 교차했다.

그러나 목을 축이고 갈증이 풀리니 현실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요즘 문재인정부가 추진하는 경제 정책을 보면 이게 맞는 방향인지 가끔 의구심이 든다. 재정을 투입해 국민 생활의 질을 높이는 정책은 무조건 환영할 일이지만, 이를 뒷받침할 미래 먹거리 등 경제 비전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느낌 때문이다. 27일 전격 발표한 신고리 5, 6호기 건설 중단 결정도 다소 의아하다. 현재 공정률 29%에 이미 집행된 공사비가 1조6000억원에 이른다는데 공사를 중단시키고, 최종 결정을 여론과 시민배심원단에게 맡기는 건 모양새가 어색하다.

위험한 원전을 폐기한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지만 자원 빈국인 우리가 이처럼 서두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수십년 일궈온 우리 원전산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탈핵은 세계적 추세라지만 아직도 원전을 건설하려는 국가는 수없이 많다.

이웃나라 중국은 오히려 원전 굴기(?起)를 내세우며 가장 적극적이다. 겨울철만 되면 스모그로 고통받는 중국의 원전에 대한 애착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중국은 2012년 자체 원전을 개발하고 2015년엔 안전성을 높인 화룽(華龍) 1호를 국내 원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미 파키스탄 이집트 아르헨티나 루마니아뿐 아니라 영국에도 원전을 수출하는 원전 대국이 됐다. 2030년까지 110기의 원전을 가동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웃나라는 뒤늦게 원전에 주력하는데, 우리는 탈 원전을 선언하니 뭔가 스텝이 꼬이는 느낌이다. 물론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할 국토 여건이나 기술 수준이 된다면 당장이라도 탈핵을 해야 하겠지만 자칫 섣부른 선언은 원전산업과 기술을 스스로 사장시킬 수 있다. 그런 얘기를 ‘원전 마피아’들의 생존 구실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우리의 현실을 보면 꼭 틀린 얘기도 아니다.

문재인정부의 경제 정책으로는 공공부문 일자리 늘리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사병 월급 인상, 재벌 개혁 등이 주로 떠오른다. 청년들과 소외계층의 삶을 챙기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지만 돈 걱정을 안 할 수 없다. 공공부문 일자리 확대로 공무원 조직이 더욱 방만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게다가 돈을 쓸 곳은 늘어나는데 재원을 마련하거나 경제와 산업을 어떻게 키울지 비전은 딱히 보이지 않는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보자. 중국은 국가 주도로 거의 산업 전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난 4월 화물우주선인 톈저우(天舟) 1호를 쏘아올렸고, 2022년 우주정거장을 완성한다는 목표를 착착 진행 중이다. 중국은 또 뒤처진 기존 산업은 건너뛰고 전기차나 드론, 로봇,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 중형 여객기 시험비행에도 성공하는 등 항공산업에서도 미국에 도전장을 냈다.

이웃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굴기’를 하니 사드 보복을 경험한 우리로선 자꾸 걱정이 쌓인다. 미래 산업에서 중국보다 낫다고 자신하는 분야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기업 총수들 독대하고 으스대면서 허송세월했지만 문재인정부에선 새로운 경제 비전을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 규획’에 따라 제조 강국으로 무섭게 변신하고 있다. 우리도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노석철 국제부 선임기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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