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주도적 역할 기사의 사진
역대 한국 정부 가운데 남북문제에서 처음으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대중(DJ)정부도 출발은 순탄치 않았다. 김 대통령이 1971년 대선 출마 때부터 대북정책을 가다듬어 왔고, 이 문제에 있어서 절대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미국에 빌 클린턴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그랬다. 1998년 정상회담에서 클린턴 대통령은 DJ에게 “한반도 문제에서 김 대통령이 핸들을 잡아 운전하고 나는 옆자리에 옮겨 보조적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우리 측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도 DJ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미 행정부와 의회 내에는 내켜하지 않는 분위기가 작지 않았다. 결국 DJ의 외교안보 최측근이 이듬해 미국을 찾았다. 그는 ‘장사정포 부정확 위협론’으로 미국 측을 설득하기도 했다. 북한 장사정포의 정확도가 떨어져 수도권을 향해 발사될 경우 수만명에 달하는 미 군속과 미국인의 희생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자국민 희생에 대단히 민감한 미국이 햇볕정책을 지지한 배경 중 하나였다고 이 인사는 전했다.

그런데 정권이 네 번 바뀐 한국에서 대북 주도적 역할론이 재등장했다. 이번엔 문재인 대통령과 공화당 출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서다. 두 정상은 지난 30일(현지시간)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평화통일 환경을 조성하는 데 있어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를 토대로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일 태세다. 그는 1일 워싱턴 동포간담회에서 “남북관계에서 주변국에 기대지 않고 우리가 운전석에 앉아 주도해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대통령이 다시 운전대를 잡겠다고 나선 셈이다. 하지만 이 주도적 역할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여건도 DJ 때보다 안 좋아졌다. 김정은 정권은 핵무장을 앞두고 있고 한·미 FTA 재협상을 연일 부르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의미로 이 말을 해줬는지도 확실치 않다. 공은 넘어왔지만 우리가 어떻게 차느냐에 따라 문제가 풀릴 수도, 더 꼬일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과 찰떡공조를 하면서 도발 일변도로 치닫고 있는 북한을 달래 우리 페이스로 끌고 가야 하는 난제 중 난제다.

문 대통령이 사고 나지 않게 절묘하게 운전하는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도 실감한다. 주도적 역할을 행사하는 만큼 책임도 져야하는 구조가 돼 버렸으니 말이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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