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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물은 상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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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스위스의 대표적 다국적 기업 N사가 브라질 원주민들의 땅을 구입해 샘물의 근원을 차지하려 했을 때의 일이다. 베른교회를 중심으로 이 일의 심각성을 적극 알리고 물을 둘러싼 불의한 상황에 목소리를 내는 데 동참하도록 촉구했다. ‘물은 상품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Water Is NOT a Commodity, Water Is a COMMON Resource)’이라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시민공동체로서 교회가 스위스뿐 아니라 전 지구적 토지 횡령, 물 횡령 상황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다. 교회의 깨어있는 행동은 결국 N사가 수자원의 근원이 되는 땅을 사서 사업을 벌이려던 계획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또 N사의 대표가 스위스 개신교회의 대표적 개발전문기관인 ‘만인을 위한 빵(Bread for all)’의 이사직을 내려놓게끔 했다. 기업이 이윤극대화만 추구하며 공동체의 선을 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교회가 적극적으로 문제점을 짚어내며 시민단체와 공동 대응한 결과였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해를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사람에게나 불의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시는 분이시다(마 5:45). 물은 상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온 우주 생명체의 삶이 가능하도록 주신 선물이다.

이처럼 물이 하나님의 포용적 사랑의 선물임을 깨닫지 못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못한 채 단기적 시야로 무분별하게 개발에 나섰던 4대강 사업은 ‘녹색성장’이 아니라 ‘녹조성장’만 초래했다.

이 사업은 인간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다고 창조된 피조세계를 관리할 청지기가 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됐다. 오히려 인간은 자연의 자체적 복원력에 의존해야 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더 절실하고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제 경제논리도 이윤추구뿐 아니라 생태정의와 맞물려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economy)와 생태(ecology), 교회 연합과 일치운동(ecumenism), 이 세 가지 개념의 영어단어는 모두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한다. 오이코스는 온 우주적 차원의 집을 지칭하기도 하는데, 이를 어원으로 가진 이 세 단어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인간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전 지구적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이 어떠한 방향성을 설정해야하는지 일러준다. 만물이 그분과 화해하도록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 구원 사건(골 1:20)은 우리가 인간 중심의 편협한 구원관을 벗어나 생명 중심의 신앙과 실천으로 철저하게 전환토록 촉구한다.

스위스의 신학자 크리스토프 쉬티겔베르그는 그의 책 ‘환경과 개발’에서 지구 위에 잠시 손님으로 머무는 우리가 손님으로 지켜야 할 12가지 규정을 강조했다. 물이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과 나누는 공동 자산임을 명심하고 우리 일상의 모습을 성찰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주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아모스는 ‘집짐승을 먹이며 돌무화과를 가꾸는 사람’(암 7:14)이라는 표현에서 보여주듯 생태 감수성을 갖고 경제정의와 생태정의를 연관해 살피며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역설했던 인물이었다. 살려면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라”(암 5:14)는 그의 외침은 자본주의를 극대화시킴으로써 공공선을 무시한 채 온 생명체를 고통으로 몰고 가는 이 시대에 새롭게 강조돼야 한다(암 5:24).

유엔이 2016년부터 30년간 전 지구적으로 함께 노력해야 할 ‘지속가능개발 목표’ 17개 조항에서 물 관련 조항들을 별도의 주제로 삼은 것은 그 사안의 긴박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지속가능개발 목표는 특정 지역의 사람들이나 특정 국제기구만의 구호가 아니다. 하나님의 집 오이코스 안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생명 중심의 사고방식으로의 전환과 구체적 실천을 통해 동참해야 할 일이다.

정미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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