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섬세한 붓질로 그려낸 아내의 초상 기사의 사진
토마 에리츠망 ‘더블 포트레이트’. 캔버스에 아크릴
코트 깃을 곧추세운 여성이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다. 가죽장갑을 낀 것을 보니 날이 꽤 쌀쌀한 듯하다. 울창한 나무와 잔디 위로 어둠이 내려 사위가 짙푸른 빛으로 침잠해가는 상황에서 여인의 얼굴만이 또렷이 빛을 발한다.

저녁 무렵 공원의 싱그러운 대기와 여인의 옆모습을 섬세하고도 차분하게 그려낸 이 그림은 올해 런던 국립초상화미술관의 초상화 공모전에서 2등상을 받은 토마 에리츠망(43)의 작품이다. 인물의 표정이 더없이 평온한 가운데, 색채도 최대한 절제해 그윽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초상화다.

프랑스 화가인 에리츠망은 임신한 아내 캐롤린과 공원을 거닐다가 아내의 옆모습에서 빛이 번쩍이는 것을 보고 이 그림을 그렸다. 에리츠망은 19세기 프랑스 자연주의 화가 바스티앙 르파주의 초상화를 늘 흠모해 왔는데, 아내의 그날 모습에서 르파주가 스치듯 떠올랐다고 밝혔다.

영국의 석유회사 BP가 후원하는 세계적 권위의 이 초상화 공모전에 에리츠망은 여러 번 출품했다가 마침내 2등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상금은 1만 파운드(1487만원)다.

올해로 28회째를 맞은 BP 초상화 공모전에는 87개국에서 2580명의 화가가 응모했는데, 1등상(상금 3만 파운드)은 8개월 된 딸에게 엄마젖을 먹이는 아내를 그린 벤저민 설리번(영국)이 선정됐다. 1, 2등상 모두 아내의 초상을 그린 작품이 차지해 화제를 모았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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