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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나미] 참전용사들 예우해야

[청사초롱-이나미] 참전용사들 예우해야 기사의 사진
미국을 방문한 한국 대통령이 장진호 전투 기념비 앞에서 미군의 노고를 치하하며 연설할 때 초대받은 노병들이 눈물을 훔쳤다. 어쩌면 그 장면을 보며 같이 운 한국인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필자의 아버지도 6·25동란 중 소년병으로 참전하셨다. 이십년 전 너무 갑자기 돌아가셨기에 전쟁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도 정리하지 못해 죄송스러울 뿐이다. 생전에 아버지께서는 술이 거나해지지 않으면 전쟁에 대해 전혀 입을 떼지 않으셨다. 맨 정신으로 기억하기엔 너무 아픈 상처였을 것이다.

엄혹한 전쟁의 시간을 직접 견뎌내야 했던 참전 용사들의 숫자도 이젠 점점 줄어들어 기억이 점점 더 의식에서 사라지고 무의식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과거가 그저 화석이 되고 만다면, 참 허무한 일이 아닌가.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되어 그런지 신세대들이 전쟁과 기아에 대한 기억을 공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다. 물론 치열한 경쟁으로 나름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과거사는 진부한 신세타령처럼 들릴 수 있다. 나라를 지키느라 자신을 희생한 이들에 대한 홀대와 무관심은 때론 너무 냉정하기까지 하다. 장애를 지니고 살거나 가족을 저세상으로 보내야 했던 이들은 물론 지금 병원에 누워 있는 죄 없는 젊은 군인들도 그런 사회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분단에 대한 책임은 과거 미국·소련과 한국의 위정자들이 책임질 문제인 것이고, 명령에 따르는 일반 미군이나 한국군에는 미안하고 고마워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안고 사는 미군이나 군대에서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안고 사는 한국군이나 귀한 아들들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한 예우는 미국에 비해 우리가 한참 모자란다.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한 빚을 우리가 제대로 못 갚고 있다는 뜻이다. 국가가 불러 의무를 다한 것에 대한 보상이 터무니없이 부족하고 그 희생을 몰라준다면 어느 누가 군대에 가고 싶겠는가.

사회 갈등의 해결책을 일자리 나누기나 경제 민주화 같은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전쟁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의 심리적 차이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군 복무와 관련된 크고 작은 상처들도 제대로 보듬고 치유해 주어야 한다. 홀로코스트의 상처가 예술과 역사를 통해 유대인의 가장 큰 자원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민족이 겪었던 전쟁과 비극이 새롭게 자리매김 돼야 대한민국도 일류국가가 되지 않을까.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했던 군인과 그 가족에 대해 정당한 예우 없이 사회 발전이나 통합은 없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가 끝난 후 목숨 바쳐 지킨 나라가 망했다고 걱정하는 노인이나 참전 용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들의 서운함을 노망이나 무지 혹은 아집으로 매도만 할 게 아니라 왜 그런 생각의 틀에 빠지게 되었는지, 전쟁과 혁명의 상처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왜곡된 이념을 심어 놓게 되었는지,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참전 용사나 그 가족들에 대한 치유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이름 없는 민중의 삶이 꼼꼼하게 기록되는 미시사(微視史·microhistory) 복원 작업도 더 활발해지면 좋겠다. 전쟁을 부추긴 후 승리하면 그 과실을 따 가는 것은 권력자와 그 주변이지만, 전쟁 때문에 고통받고 생명을 잃는 것은 이름 없는 민중이 아닌가.

아픔을 견딘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라도 이름 없는 희생과 헌신에 제대로 가치를 부여하고 제대로 기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짐승의 시간을 견디며 자유와 평화를 지켰던 군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지옥의 전장에 머물고 있지 않겠는가. 총칼로 받은 상처들은 기념일의 짧은 치사를 넘어, 아주 오랫동안 되살리고 기록하여 진실한 가슴으로 나누어야 조금씩 아물어 갈 것이다.

이나미 심리분석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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