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직 법관이 ‘사법부 블랙리스트’ 국정조사 촉구 기사의 사진
뉴시스
현직 법관이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촉구한다”는 취지의 글을 판사 내부 전산망인 코트넷에 실명으로 올렸다. 사법부 내부에서 블랙리스트 국정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터져 나온 건 이번 사태가 불거진 이후 처음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0단독 남인수(43·사법연수원 32기) 판사는 4일 코트넷에 올린 3000여자 분량의 글을 통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행정실) 해당 컴퓨터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방안을 오는 24일 2차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 안건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남 판사는 “해당 컴퓨터는 행정실 소속 심의관의 행정용 컴퓨터로 판사실 소속 판사의 재판용 컴퓨터와 그 성격이 다르다”며 “결정문이나 판결문 초안 등이 보관되지 않으므로 당사자 권리보호와 공정한 재판의 전제가 되는 법관 독립 영역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법관 독립을 위해 해당 컴퓨터를 보호해야 한다”는 행정처 측의 조사 거부 논리를 정면 반박하는 논리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행정처가 전국 판사들의 성향을 뒷조사한 파일을 갖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며 불거졌다.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블랙리스트는 사실무근”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의혹은 잦아들지 않았다. 지난달 19일 열린 1차 법관회의에서는 “행정처 컴퓨터에 대한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안건이 84대 14로 찬성 의결됐지만 양승태(사진) 대법원장은 28일 입장을 발표하며 사실상 컴퓨터 조사 거부 의사를 밝혔다.

남 판사는 “혼외자 의혹을 받는 공적(公的) 인물이 유전자 검사 요구를 사생활을 이유로 거부하면 사람들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뀐다는 논리가 여기에 적용되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양 대법원장이 “판사의 컴퓨터를 열어보자는 것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라며 조사 요구를 불수용한 점을 겨냥한 것이다.

법관회의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남 판사는 “블랙리스트 의혹 규명을 위해 핵심 증거인 해당 컴퓨터 조사 요구를 80%가 넘는 비율로 의결했는데도 결국 전면 거부됐다”며 “이는 향후 상설화될 법관회의의 위상을 예고한다”고 했다. 이어 “법관회의 의결에 대한 강제력을 부여하는 입법이 필요하다”며 “입법만으로도 사법 행정권 남용을 미리 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 판사는 이날 국민일보와 만나 “블랙리스트 의혹 해소는 법관 독립의 전제조건”이라며 “블랙리스트가 해당 컴퓨터에 있다면 그것은 범죄이고, 판사들 머릿속에 블랙리스트 의혹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가현 양민철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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