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입니다. 귀교회가 저작권법을 위반했습니다” 교계 ‘폰트’ 내용증명 주의보

“법무법인입니다. 귀교회가 저작권법을 위반했습니다” 교계 ‘폰트’ 내용증명 주의보 기사의 사진
경기도 화성에서 목회하는 고믿음(가명) 목사는 지난달 중순 한 법무법인으로부터 내용증명을 받았다.

법무법인은 “귀교회 홈페이지에 사용된 폰트(글꼴)를 제작한 업체를 법률대리하고 있다”며 “폰트를 무단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하고 있으니 해당 업체의 폰트 프로그램을 구입하라”고 요구했다. “구입하지 않을 경우 법적 절차를 밟겠다”고 엄포도 놓았다.

당황한 고 목사는 폰트 구입을 검토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소속 교단 총회와 변호사 등에게 자문을 구했고 법무법인의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고 목사는 5일 “처음엔 법무법인의 요구대로 프로그램을 구입하려 했지만 알아보니 홈페이지를 제작했던 업체와 폰트 업체 사이에 해결할 문제이지 홈페이지를 구입한 교회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고 말했다.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일부 법무법인들이 저작권의 적용 범위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교회들에게 폰트 프로그램 구입을 유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교회들 중에는 내용증명을 법적 구속력이 있는 문서로 판단해 법무법인의 요구에 무조건 응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폰트 파일’과 ‘폰트 디자인’에 대한 법적인 해석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회가 폰트 파일을 직접 사용해 결과물을 제작한 게 아니라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폰트 디자인이 담긴 결과물을 구입했을 경우 교회에는 법적 책임이 없다.

상표 디자인과 저작권 전문가인 조민정(파이법률사무소) 변리사는 “교회에서 홈페이지를 자체 제작하거나 자막을 만들 경우 반드시 폰트 프로그램을 구입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업체에 비용을 지불하고 결과물을 구입한 경우 최종 사용자인 교회는 폰트와 관련해 법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설명했다. 이어 “폰트 저작권 분쟁이 급증하면서 일방적으로 ‘합의’를 요구하는 법무법인들이 있는데 바로 응하지 말고 전후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는 게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도 “법원은 ‘폰트 디자인’의 저작물성을 부정하며 보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며 불법 폰트 프로그램을 직접 사용하지 않은 이상 문제될 게 없다고 밝혔다.

서울고법도 1994년 “폰트 도안(디자인)은 저작권법상 보호의 대상인 저작물 내지 미술저작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반면 ‘폰트 파일’에 대해선 대법원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판단해 저작권법에 따른 보호를 받는다”고 판결했다.

따라서 교회 컴퓨터에 불법으로 내려받은 폰트 프로그램이 없다면 저작권법에 따른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교회가 직접 자막이나 홈페이지를 제작할 경우엔 반드시 폰트 프로그램을 정식으로 구입해야 한다.

소속 교회들의 이 같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대책 마련에 나선 교단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은 조만간 한 폰트 프로그램 제작 업체와 계약을 맺고 산하 교회들이 저렴한 비용에 폰트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예장통합 전산홍보팀 이상원 과장은 “폰트 저작권 분쟁이 워낙 심해 교단 산하 교회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면서 “교단이 폰트 업체와 일괄 계약해 저렴하게 공급하고 총회 자체적으로 전용 폰트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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