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J선배 취재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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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당분간 구경이나 해라.” 내가 서울중앙지검 출입기자로 온 첫날 J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최선의 지시였음을 알아채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가 법원 검찰의 시공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활자로 미분하는 장면을 보며 조금씩 법조기자가 돼 갔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때 난 뭘 구경하는 건지도 몰랐을 것이다.

J선배의 인생 이할오푼은 밤낮없이 서울 서초동에 바쳐졌다. 모든 이가 ‘1년만 더, 1년만 더’를 외친 까닭에 그는 오래도록 사회부 법조기자였다. 대북송금 특검을 취재하던 초년 시절을 빼고도 최근 연속 6번의 새해를 서초동에서 맞았다. “전쟁터가 익숙한 건가?” 취재기자 ‘3D’로 꼽히는 법조 출입을 계속하는 그를 보고, 혹자는 참전용사의 평화 부적응 같은 것 아니냐고 한다.

다만 나는 고대 로마의 역사가를 흉내 내서 “그는 전장에서도 한가로웠다”고 쓰고 싶다. “자, 시작이다!” 검찰이 어딘가를 압수수색하면 나는 울고 싶은데, J선배는 ‘주사위가 던져졌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금고지기와 내연녀, 내부고발자들의 사건을 사랑했다. 드러나는 자금흐름에 흥분하고 현대사와 공안의 긴장을 흥미로워했다. 말 위에서 ‘갈리아 전기’를 적은 신화에 빗대긴 어렵겠으나 그도 택시에서, 맨바닥에서, 술집 테이블에서 글을 썼다.

나는 “곡조가 틀리면 주랑이 돌아본다”는 삼국지 주유의 고사(故事)를 빌려와 “기사가 틀리면 J선배가 돌아본다”고도 적고 싶다. “대체 이걸로 뭘 쓰자는 말이냐?” 앞뒤가 안 맞고 빈틈 있는 보고를 그는 정확히 짚어냈다. 일방적 입장은 일기장에나 쓰라고도 했다. 언젠가 그가 고개를 저어 내 딴엔 훌륭했던 기사가 출고되지 못했다. 낙담이 컸는데, 머잖아 제보자가 거꾸로 수사를 당했다. 겁도 알아야 낸다는 걸 그때 배웠다.

서초동에서 볼 걸 다 본 그는 웬만한 보고에는 심드렁해 했다. 대신 모두가 힘겨워하는 매듭을 푸는 재주로 후배들의 분통을 감당했다. “어떻게 그걸 선배한텐 말을 해준답니까?” 밥값 못한 부끄러움에 내가 짐짓 원통해하면, 꾸짖는 대신 “내가 너보다 얼굴은 잘생겼다”고 말했다. 검사들 집 앞에서 새벽을 맞고 미친 사람처럼 그들의 출근길을 따라붙던 그의 세월을 내가 알 리 없었다. “지금 제일 괴롭고 바쁜 이들이다.” 그는 취재원의 거짓말에도 실망하지 않았다.

J선배는 사회악의 하수종말처리장이 서초동이란 진리를 초년병 때 깨달았다. 돈과 권력을 두고 말이 많으면 누군가 서초동에 와 심판받으리라는 것도 동물적으로 알아챘다. 그래서 그의 오감은 온통 서초동에 집중됐다. 만사를 정의인지 아닌지로 따지는 그가 질려서, 나는 “우리 같은 이들이 뭐가 잘나서 나라 걱정 하느냐”고 대들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그는 식당 식탁의 밑반찬을 맛보곤 “음, 세상에 별일은 없나 보다” 하는 식이었다.

이런 그를 봐온 서초동 사람들은 “J기자는 여기가 체질이다” 한다. 하지만 그가 원고지 앞에서 얼마나 기진맥진하는지는 내가 잘 안다. 마감 전 그의 모습은 흡사 ‘방망이 깎는 노인’이다. 쓰고 고치고, 또 다듬고 먼 데 보고… 그만하면 된 듯한데, 그는 김훈도 아니면서 첫 문장을 중얼거리며 다시 담뱃불을 붙였다. 얼핏 보면 집착이지만 들여다보면 집념이었다. 그의 초조와 분노는 단두대 같은 마감 시간의 칼날에야 겨우 끊어졌다.

그의 어깨너머로 알려지거나 확인되는 세상을 접하던 내게도 서초동의 시간들이 내려앉았다. 처음엔 길을 잃을까 염려해 건물과 층수만 보고 다녔는데, 어느 날 검찰청과 법원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그 하늘빛에 맘 놓은 순간 나는 주제를 넘었던 것 같다. 한번은 피고인을 괜히 비아냥댔더니 그가 “살아 있는 자는 모두가 죄인이다”라고 말해 부끄러웠다.

당분간 구경이나 하라던 그 순간부터 내가 찍어온 영화의 주인공은 J선배였다. 나는 그의 다음 서초동 신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검찰 개혁, 사법 개혁, 언론 개혁…. 그와 내가 발 딛고 부딪혀온 모든 동네가 새로 태어나야 할 대상으로 지목돼 있다. 여론이 법조의 오만을 우려하고 법조는 여론의 변덕을 경계할 때, 나는 J선배가 어떻게 쓰는지 보고 싶다. 지연된 정의와 친하고 굴종에 관대했던 기자가 어떻게 신뢰를 되찾을지, 나는 J선배에게 물어야 한다.

그에게 모든 걸 보고했지만 이 칼럼은 아니다. 다 쓴 뒤 이름만 J라 고친다. 그에게 실명보도의 원칙을 물으니 “유명인이 아니면 구속영장 청구 전엔 이니셜이다”라고 한다. 아, 그가 곧 나를 돌아볼 것 같다.

이경원 사회부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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