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전석운] “북한 핵무장은 기정사실” 기사의 사진
“하나님, 바꿀 수 없다면 받아들이는 평온을/ 할 수 있다면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이 둘의 차이를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미국의 핵 전문가인 제프리 루이스 미들베리 국제연구소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국장은 북한의 핵무장을 주제로 한 대담에서 ‘평온을 구하는 기도’를 읊었다. 블룸버그 통신의 토빈 하쇼 논설위원이 진행하고 8일(현지시간) 공개한 대담에서 “외교적 군사적 해법도 안 보이니, 북한이 자멸을 초래하는 핵무기 사용을 하지 않을 만큼 이성적이기를 바랄 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자 루이스 국장은 기도문 인용으로 말문을 열었다. 평온을 구하는 기도는 미국의 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1892∼1972)가 작성한 것으로 1930∼40년대 미국 사회에 널리 확산됐다.

루이스 국장은 “북한의 핵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걸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 국장은 북한의 핵 개발 역사와 집착 정도를 감안하면 북한의 핵 폐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무장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의견은 민간 전문가들뿐 아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정보기관 수장인 제임스 클래퍼 당시 국가정보국(DNI) 국장은 미 외교협회 세미나에서 “북한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지난 4일 우주공간으로 발사한 미사일은 거의 수직으로 날아올라 우주정거장 궤도보다 7배 이상 높은 2802㎞까지 솟았다. 북한이 이 미사일을 정상적인 각도로 쐈다면 미국 알래스카와 하와이까지 닿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다음 날 성명을 내고 이 미사일을 ICBM으로 인정했다. 미 항공우주 연구기관인 에어로스페이스의 존 실링 연구원은 북한이 캘리포니아 등 미국 서부 대도시까지 타격할 만큼 ICBM 사거리를 조금 더 늘리는 건 시간문제로 봤다.

G20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 함부르크에서 만난 한국과 미국 일본 세 나라의 정상들이 내놓은 공동선언문은 ‘대륙 간 사거리를 갖춘 탄도미사일’로 규정했지만 이는 북한을 공식적인 ICBM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치적 의지의 표현일 뿐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5차례 핵실험과 ICBM 성공으로 사실상 완성됐다고 봐야 한다.

일부 전문가는 북한이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할 만큼 소형화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북한의 핵무장을 완성 단계로 보기 이르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하지만 루이스 국장은 과거 중국이 1966년 4차 핵실험 때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실제 발사한 사례를 들어 5차례나 핵실험을 마친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를 끝냈다고 본다. 또 중·단거리 미사일의 경우 북한은 시험단계를 거쳐 실전배치를 마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 3월 동해상으로 발사된 노동미사일은 한·미 연합훈련에 반발한 북한이 F-35 전투기가 발진한 이와쿠니의 주일 미군기지를 겨냥한 가상의 공격이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한반도 위기 시 증원되는 미군 전력이 도착하는 부산항 타격을 전제로 한 북한의 군사훈련이었다. 실제 미사일 궤적도 북한의 주장과 모두 일치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북한이 핵무장을 사실상 완료했지만 핵을 먼저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러나 루이스 국장은 “전쟁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김정은은 미군이 진입하기 전에 인명살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서울과 도쿄 등에 핵미사일을 날릴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북한의 핵을 물리적으로 없애는 방법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하는 게 최선이다. 미국과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를 보인다면 남은 카드는 남북관계 개선밖에 없어 보인다. 제재와 압박을 병행하면서도 북한과의 대화채널 복구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엄중한 상황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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