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5년 아닌 50년 생각하는 교육개혁을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개혁은 무엇일까? 단연 ‘교육 개혁’이다. 프랑스의 르몽드는 한국의 교육을 “세상에서 가장 경쟁적이고 고통스러운 교육”으로 표현했다. 지난해 OECD 전체에서 한국 아동의 행복도 지수는 꼴찌다.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산업화 시대 교육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맞을 수는 없다. 아이들은 불행하고 부모들은 불안하고, 사회적 효용도 없는 교육을 바꾸지 않고 무엇을 바꾼다는 말인가. 단언컨대 근원적 교육 개혁 없이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교육은 세 단계를 거쳐 왔다. 첫 단계는 60∼70년대 교육의 대중화 시대다. 전 세계에서 중등교육 신장률이 가장 높았고,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다. 반면 학맥이 연줄이자 ‘백’이 되는 학벌 사회가 굳어진 시기였다. 둘째 단계는 70년대 중후반 이후의 ‘산업화 교육 시대’다. 고도 성장기 각종 산업에서 일할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양산하는 체제였다. 고교 서열화 대신 대학의 서열화가 굳어졌다. 당연히 너도나도 문이 좁은 (일류) 대학을 보내려고 과열 경쟁하는 체제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고성장 덕분에 이 단계에서 학교를 나오면 취업문은 넓었다. 안정적 중산층의 길은 열려 있었다.

90년대 중반 특히 IMF 위기 이후부터 현재까지가 세 번째 단계, ‘교육 패러독스의 시대’다. 이 단계에서 기대와 현실의 괴리는 너무 깊어졌다. 교육이 낳은 좌절로 온 국민을 실존적 불안으로 몰아넣었다. 어릴 때부터 사교육에 시달리며 대학까지 죽어라고 공부해야 했지만 결과는 비참했다. 이 세대의 선배들에게는 학교라는 터널을 통과하면 밝은 빛이 있었다. 기회의 사다리가 주어졌다. 하지만 오늘의 청년은 소수를 제외하고 터널을 통과한 후에 다시 캄캄한 터널에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경계는 더 깊어졌다. 기대의 좌절을 경험한 젊은이들에게 ‘생명의 재생산’은 희망이기보다는 두려움이다. 교육의 패러독스는 초저출산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 필요한 인재와 공급되는 인재 사의의 괴리도 심화되었다.

마침 김상곤 교육부총리가 취임사에서 교육 개혁의 방향을 밝혔다. “누구나 공평한 교육을 받게 교육사다리를 복원하고” “무상교육을 통해 보편교육 체제를 확고히 하고” “자사고·외고 문제 및 특권교육의 폐해를 바로잡는 교육 개혁”이 그 핵심이다. 수능 절대평가제로 전환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그의 소신대로 교육 평등에 강한 방점이 찍혀 있다. 골고루 좋은 교육을 받게 하겠다는 방침에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래를 위로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위를 깎아 아래로 조정하겠다는 것은 큰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교육부 수장이 특정 학교들을 특권 교육의 적폐로 규정하고 이를 없애겠다고 달려들면 이념적 갈등만 격화될 뿐이다. 다행인 것은 김 부총리가 근원적인 방안을 국가교육회의에서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차제에 국가교육회의를 진보 보수를 뛰어넘어, 각 분야의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들을 모아 근원적 교육 개혁 프로그램을 만드는 협치의 장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 5년 정부의 호흡이 아니라 50년의 호흡으로 기획하라고 강권하고 싶다. 이제 이 나라에는 한 해 40만명 남짓밖에 태어나지 않는다. 한 세대 전에는 한 해 100만명 가까이 태어났다. 이렇게 줄어든 아이들을 스스로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자랑스러운 시민이자 미래를 위한 인재로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를 깊게 고민해야 한다. 모두에게 똑같은 스펙을 요구하는 교육은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도록 하는 교육’으로 바꾸어야 한다. 학습이 행복이 되어야 한다. 창의성과 공감 능력을 키우고, 함께 문제를 풀 줄 알고 인성을 갖추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철학과 프로그램을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

대한민국 교육 패러다임을 근원적으로 바꾸는 교육 개혁의 원년을 조급하게 설정하지 말자. 가장 중요한 일은 충분히 숙의하여 작은 이익을 뛰어넘어 대의를 중심으로 큰 틀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다. 국가교육회의, 나아가 국가교육위원회가 이런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숙성된 안을 만들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자. 그렇게 해서 만일 문재인정부 임기 안에 근원적 교육 개혁을 제대로 시작만 해도 큰 역사적 업적을 이룬 정부가 될 것이다. 또다시 교육 정책을 책임진 사람의 개인적 신념이 교육 개혁이라는 구호로 둔갑해 섣불리 교육 현장을 흔들어서는 안 된다. 교육이야말로 온 국민의 문제다. 어렵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교육 개혁만이 궁극적인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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