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현동] 집배원의 죽음 기사의 사진
또 한 명이 죽었다. 올 들어 벌써 12명째다. 살인적 노동이 원인이라고 한다. 스스로 목숨을 버렸으니 분명 자살이다. 동료들은 ‘타살’이라고 주장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단언하기 힘들다. 그의 직업은 집배원이다. 집배원 21년 차인 그는 지난 6일 자신이 일하던 우체국 앞에서 자신 몸에 불을 붙였고 이틀 뒤인 8일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로 갔다.

기억 속의 집배원은 정겹다. 요즘은 SNS가 대세지만 전화마저 귀했던 시절 집배원은 세상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메신저였다. 많이 걸어서인지 종아리 핏줄이 유난히 도드라졌다. 그러나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냉수 한잔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사랑의 이야기는 물론 이별의 슬픔도 그들을 통해서 전해졌다. 가죽가방을 어깨에 메고 빨간 자전거를 탄 그들과 마주칠 땐 가슴이 쿵쾅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펜팔이 유행이었던 당시 사춘기 소녀들은 더 그랬다. 그 소녀들은 지금 50, 60대에 접어들었다.

지난 5년간 사망한 집배원은 75명. 심근경색, 뇌출혈 등 돌연사가 많다. 자살자도 부쩍 늘었다. 물론 사고사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까. 집배원이 처리하는 택배와 우편물은 하루 2000개 안팎. 근로시간도 연평균 약 2800시간으로, 2015년 기준 근로자 연평균 근로시간(2113시간)보다 훨씬 길다. 같은 해 노동부 발표를 보면 우정사업본부 재해율은 1.03%로 일반 근로자 재해율(0.5%)의 2배를 넘는다. 이렇듯 동료들은 과중한 업무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하지만 현행법은 ‘과로 자살’을 업무상 과실로 인정하지 않는다.

죽을 용기가 있었다면 그 용기로 살아갔어야지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조심스럽다. 죽음 앞에서 그 어떤 변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1970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열악한 노동 현실을 죽음으로 항거했던 전태일이 퍼뜩 스친다. 47년 전 일이 오늘날에도 일어났다. 슬픔과 함께 분노가 치민다. 기막힌 현실이다.

글=박현동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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