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의 작은 천국] 원두막에서 열린 우주의 창

[김선주의 작은 천국] 원두막에서 열린 우주의 창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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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두막은 참외나 수박 등속이 익어갈 무렵 그것을 지키기 위해 밭머리에 지은 감시용 막집입니다. 그런데 시골에 원두막이 없어진 지 오래되었습니다. ‘서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엄격해진 사법체계와 도덕관념, 경제적 풍요가 서리 문화를 사라지게 했습니다. 그러니 원두막도 자연스레 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원두막에서는 설혹 누군가가 서리를 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과도하게 경계하며 감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서리는 도둑질이 아니라 먹을 것이 궁했던 시절에 간식을 조금 나누어 먹자는, 재미로 하는 장난이었습니다. 적당히 눈감아주고 적당히 훔쳐오는, 인정에 의해 서로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는 윤리선이 원두막이었습니다.

그러니 원두막에서 밤을 새는 사람은 긴장하기보다는 한적한 시간과 공간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참외나 수박, 오이, 포도 같은 여름 과일들을 따서, 맑고 시원한 물에 동동 띄워놓았다가 언제든지 건져다 먹는 간식의 풍요까지 있었습니다. 여름 한 철에만 맛볼 수 있는, 그 특별한 과일의 맛과 향뿐만 아니라 시간의 향기까지 즐길 수 있는 있는 곳이 원두막이었습니다.

원두막을 지키는 일은 큰 노동력이나 지혜를 요하지 않기 때문에 열대여섯 살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니 중학교에 다니는 첫째나 둘째 아들에게 원두막을 맡겨도 됩니다. 그러면 또래 친구 서너 명을 함께 데리고 갑니다. 원두막은 사춘기 아이들에게 천혜의 해방공간이었습니다. 어른들의 잔소리도 없고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도덕적 경계심도 느슨해진 공간, 그곳에서 아이들은 웃자라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놀다 지치면 사방이 열린 원두막에 누워 밤하늘을 봅니다. 광대무변한 우주, 검은 주단 같은 어둠의 심연에 장대한 서사가 펼쳐지는 것을 봅니다. 별과 별 사이 어둠의 심연에 깊이 빠져들수록 숨이 막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시간을 만나게 됩니다. 말할 수 없는 그 시간은 아이들에게 신비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때 아이들은 사람의 지혜와 지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심원(深遠)한 세계를 경험합니다. 그날의 신비는 입안에 사탕을 굴리듯 아이들의 삶 가운데 단맛을 냅니다. 하나님의 침샘에서 고여 있던 신비의 단맛이 아이들의 인생을 적시게 됩니다.

원두막은 규정할 수도 없이 출렁이는 시간의 풀(pool) 속에 나를 던져둘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원두막에는 학교도 병원도 군대도 없습니다. 해가 똥꾸녕까지 떠오르고 왕매미가 귀를 찢는 소리로 울어댈 때까지 늦잠을 자도 되는 곳입니다. 원두막은 거대한 시간의 풀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원두막이 사라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올 여름엔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같은 규격화된 프로그램 다 없애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원두막에서 몇 날 며칠을 키득거리며 밤을 새워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저 무진장한 우주의 심연에 발을 담그고 물장구를 치면서 말입니다. 하나님을 교육하기보다 하나님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김선주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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