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생명을 지키려는 母性, 평화와 화해를 향한 노정이 되다

<6> 히브리 여인들과 바로의 딸

[인류 역사를 바꾼 성경 속 여인들] 생명을 지키려는 母性, 평화와 화해를 향한 노정이 되다 기사의 사진
바로의 딸(오른쪽 세 번째)이 갈대상자 위에 놓여 있는 아기를 두고 시녀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히브리 여인으로 보이는 한 시녀(오른쪽)가 가슴을 드러내면서 아이에게 당장이라도 젖을 물릴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오른쪽에는 왕궁이 보이고, 왼쪽 하단에는 아기의 어머니와 누이로 보이는 여성이 갈대 숲 사이에 아기가 담긴 갈대상자를 놔두는 장면도 작게 그려져 있다. Web Gallery of Art·National Gallery of Ar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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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명령을 거역한 히브리 산파들

역사는 특정한 영웅적 인물이 주도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역사 전환의 계기를 이루는 데 크게 기여했음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택함 받은 민족’ 이스라엘의 역사에서는 수많은 갑남을녀(甲男乙女),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데 동참했다. 그 섭리가 모여 구속의 역사가 전개된 것이다. 그 예는 성경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세의 어머니와 그 누이들, 그리고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바로의 딸이 행한 일탈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야곱의 자손들이 요셉을 따라 이집트로 이주한 뒤, 수백 년이 흐르면서 히브리 족속은 큰 민족을 이뤘다. 이집트 왕 바로는 히브리 민족이 융성하자 위기의식을 느낀다. 그래서 억압정책을 펼치기 시작한다.

히브리인들에게 힘든 강제 노역을 시키는가 하면 히브리 산파들에게 지시해 아기를 받아낼 때 아들이면 즉시 죽이고 딸만 살려두도록 했다. 그러나 산파들은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 바로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바로는 이집트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히브리 집안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면 살려두라”(출 1:22)

히브리 민족 말살 정책에 히브리 남성들은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반면 히브리 여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바로의 반인륜적인 명령에 반기를 들었고, 히브리 민족의 대를 잇도록 한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모성(母性), 여성의 근원적 본성

한 레위 가문의 남자가 레위 가문의 여자와 결혼해 아들을 낳았다.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기에 바로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부부는 석 달 동안 몰래 키웠지만 더 이상 아기를 숨길 수 없었다. 아기 어머니는 갈대로 상자를 만들어 아기를 넣고 나일 강가 갈대숲에 뒀다. 그리고 누이에게 아기가 어떻게 됐는지를 숨어서 살펴보라고 한다.

마침 바로 왕의 딸이 시녀들과 함께 강가로 목욕을 하러 나왔다. 공주는 그 갈대상자를 발견하고 시녀에게 가져오도록 했다. 공주는 잘 생긴 아기를 보고 히브리 사람이 낳았다가 버렸다는 걸 알았다. 앞서 아버지 바로가 히브리 종족을 진멸하기 위해 갓 태어난 남자 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 것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공주는 아기를 죽이기는커녕 궁궐로 데려왔다. 히브리 여인을 유모로 불러 들여 젖을 먹여 키우도록 했다. 모세가 태어나고 버려지고 구원받은 과정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렇게 모세는 유아기에 죽음의 고비를 넘어 바로의 궁궐에서 살게 된다(출 2장). 모세가 왕명에 의해 죽지 않게 된 건 히브리 여성들의 자발적인 모성애 덕분이다. 아기를 낳고 그 생명을 잘 양육하려는 여성의 마음은 이념이나 사상을 뛰어넘는다. 여성의 근원적 본성이다.

지혜·용기·사랑을 겸비한 여성

모세를 살려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도록 한 숨은 주인공들 중에는 히브리 어머니와 그 딸들이 있다. 현실적으로 이들과 적대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바로의 딸도 있었다.

히브리 민족은 철저하게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를 지키고 있었다. 사람을 계수하는 데 있어서 여성은 끼지도 못했다. 그러나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데 여성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히브리 여성이었던 모세의 어머니와 그의 누이가 확인해준다.

레위 집안에서 얻은 아들을 바로 왕의 명령대로 죽일 수 없기에 석 달 동안 숨기면서 키운 이는 누구인가. 아기의 아버지가 그런 제안을 했을까. 성경에는 아기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다.

아기를 몰래 키우려다가 결국 버릴 수밖에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갈대상자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역청을 발라 안전한 갈대배를 만든 이들은 누구였을까. 그 속에 아기를 넣고 나일 강가 갈대 사이에 놔둔 이들은 또한 누구였나. 그들은 다름 아닌 여인들이었다. 지혜와 용기와 사랑을 쏟아내 생명을 살려낸 이들이다.

현실적으로 아기를 버렸다고 볼 수 있지만 여인들은 아기를 정말 버린 것이 아니었다. 그 누이로 하여금 숨어서 누가 아기를 구해주는지 살피도록 한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레위 집안의 여자는 이 아기를 누군가 구해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어머니는 아기를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삶을 찾아가도록 아기의 앞길을 열어줬던 것이다.

어머니로서는 아기를 살려낼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바로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기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전해진다. 3개월이나 몰래 숨겨서 키웠고, 안전한 갈대바구니에 아기를 넣어 강가에 뒀다. 아기의 누이로 하여금 숨어서 그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를 살피도록 하는가 하면 나중엔 아기의 유모가 돼 아기를 손수 돌볼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사실이 탄로날 경우 이 여인들은 죽음도 면치 못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한 생명을 구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섭리를 이룩하는 데 있어서 여성의 역할이 얼마나 위대한지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역사적 소명을 인식한 공주의 선택

바로의 딸, 공주의 인간적인 소망은 무엇일까. 권력의 그늘을 향유하면서 잘 생기고 사내다운 청년을 만나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버지의 권력을 나눠 행사하면서 세상의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남성 권력자인 아버지는 이집트의 국왕이었다. 그에겐 나라를 더 부강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더 강력하게 유지하고 세력을 확장하려는 욕망이 넘쳤을 것이다. 이는 권력 지향적인 남성의 본성이다. 그래서 항상 그 권력을 지키고 키우고자 온갖 방법을 강구한다. 폭력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도 때로는 불사한다.

그런데 바로의 딸은 아버지와 달랐다. 공주에게선 새로운 역사와 그러한 역사를 이뤄내려는 소명의식이 엿보인다. 나아가 공주는 히브리 민족의 인류사적 소명 또한 예측하지 않았을까. 그녀는 강가에 버려진 히브리 아기를 살려줬다. 뿐만 아니라 그를 양자로 삼아 궁궐에서 함께 거하도록 한다. 공주의 일련의 행동이 여성의 근원적 모성과 더불어 역사적 소명을 되새기게 만드는 것이다.

히브리 아기를 구해준다는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역사의 변혁을 도모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바로의 공주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식했다. 이것은 모성애가 갖는 초이념적 가치인데, 궁극적으로 평화와 화해의 길을 찾아가는 노정으로 이어진다.

글=현길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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