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칸타타] “수형자들 차가운 마음, 찬양으로 녹여요”

교도소 선교 하는 영화 ‘하모니’ 실제 모델 이숙경 권사

[우먼 칸타타] “수형자들 차가운 마음, 찬양으로 녹여요” 기사의 사진
이숙경 권사는 예배 1시간 전에 서울남부교도소 등에 가서 수형자 찬양대를 대상으로 발성연습부터 한다.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발성 시연을 하고 있다. 이 권사는 “수형자들이 합창을 하면서 배려하는 방법을 알게 된다”고 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수형자들의 어머니’ 이숙경(63·신언교회) 권사는 아담했다. 장맛비가 쏟아지던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의 한 커피숍에서 이 권사를 만났다. 꽃무늬 원피스와 하이힐이 잘 어울렸다. 하이톤의 가냘픈 목소리로 반갑게 인사했다. 왠지 수형자들에게 ‘휘둘릴’ 것 같은데, 일주일 내내 교도소와 구치소를 돌며 그들에게 합창을 가르쳐온 세월이 벌써 32년이다. “합창이 수형자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했다. 진정한 변화를 말한다.

그가 교정선교에 ‘올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질적인 답을 들려줬다. “언젠가는 수형자들이 출소해 우리의 이웃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직업훈련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이 달라져야 해요. 마음의 치유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진심을 나눌 때 가능합니다.”

피아노 반주하다 깨진 마음

이 권사는 1985년 1월 피아노반주 부탁을 받고 서울남부교도소 예배모임에 처음 참석했다. 손이 시려 건반을 제대로 칠 수 없을 정도로 추운 날이었다. 수형자들은 손뿐 아니라 얼굴의 근육까지 얼어붙은 듯 표정이 없었다. 주눅 들고 잔뜩 긴장한 그들의 얼굴. 어디서 많이 본 듯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사무실에 가면 남자들이 아버지에게 막 혼나고 있더라고요. ‘뭔가 큰 잘못을 했나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수형자들의 얼굴에서 그 옛날 아버지에게 혼나던 남자들의 얼굴을 보게 된 겁니다. 아버지가 검사셨어요. 죄를 낱낱이 들춰내며 심하게 혼을 냈던 거죠. 하지만 아버지는 진정으로 그들을 교정교화하지는 못하셨어요.”

그날 이 권사는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꽁꽁 언 손으로 반주하며 다짐했다. ‘주님, 아버지를 대신해 제가 그들을 돕겠습니다.’

이 권사는 현재 서울남부교도소와 안양교도소 등 교정시설 4곳에서 ‘수형자 찬양대’ 지휘자 겸 반주자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남부교도소는 매주 두 차례 방문한다. 목요일은 복역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금요일은 전국 교도소에서 직업훈련을 받으러 오는 이들을 대상으로 예배를 드린다. 안양교도소 찬양대는 지난 4월부터 격주 화요일에 20여명의 수형자들이 모여 성가곡을 배우면서 새롭게 세워지고 있다. 형량이 긴 수형자들이 많다. 이 권사는 남자 수형자들을 ‘형제’라고 불렀다.

“우리 형제들이 좀 거칠어요. 처음엔 팔짱을 끼고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더라고요. 한두 번은 거들먹거리며 따라 부르죠. 그러다 어느 순간 자세를 바꿔 앉아요. 이내 찬송가 가사에 빠져들면서 자연스레 마음까지 움직이는 거죠.”

수형자 찬양대는 본인이 원하면 입단할 수 있다. 대부분 예배에 참석했다가 현재의 내 모습과 다른 찬양대원인 수형자를 보고 스스로 선택해 들어온다.

찬양을 부르다 치유된 마음

이 권사는 직접적으로 전도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은혜, 회개를 다룬 찬송이나 성가를 가르치면서 함께 말씀을 나눈다. 수형자들은 ‘멀고 험한 이 세상길’ ‘세상에서 방황할 때’ ‘아 하나님의 은혜로’ 등의 찬양을 좋아한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는 여자 수형자들이 즐겨 부르는 곡이다.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 무너진 나의 삶 속에 잊혀진 주 은혜/ 돌 같은 내 마음 어루 만지사/ 다시 일으켜 세우신 주를 사랑합니다/ 주 나를 보호하시고 날 붙드시리/ 나는 보배롭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라….”

수형자들을 가르치다 보면 형제들보다 자매들이 음악에 더 민감하다. 의외로 중형을 받은 자매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된다. 이 권사는 “폭력이나 폭행 등을 견디다 못해 결국 자신도 모르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것”이라며 “그러니 자매들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얼마나 크겠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그가 수형자들에게 강조하는 건 다른 게 아니다.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찬양을 나의 고백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이 떠났을 때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나요. 또 주님의 은혜를 깨달았을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치유가 된 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 권사는 청주여자교도소에서 ‘하모니 합창단’을 만들었고,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하모니’로도 탄생했다. 주의 사랑, 은혜로만 진정한 회심과 교정이 이뤄진다.

‘선불제 하나님’을 함께 찬양했으면

모태신앙인 이 권사는 원광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다 적성에 맞지 않아 성악으로 전과했다. 졸업 후에는 교편생활을 했다. 어머니합창단이나 실버합창단을 만들었고, 교정시설에선 지휘자 반주자로 교정선교를 하고 있다. 인생의 결과를 놓고 보면 잘했다. 그래서 이 권사는 ‘선불제 하나님’을 전한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복을 주셨다. 이처럼 먼저 받은 은혜가 크니 우리 함께 그 복을 나누며 살자는 것이다. 그에게 나눔의 대상은 수형자들이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깜찍한 부탁 하나를 했다. 광고를 하고 싶다며 문안도 만들었다. “나와 함께 찬양대를 해온 형제들에게. 늘 출소하는 우리 형제들에게 음악회 한 번 하자고 말만 하고 실천을 못했어요. 시간과 장소 확실하게 정해지면 제대로 광고할게요. 그 전에 ‘권사님, 나 잘 살고 있어요’라며 가끔씩 얼굴 보여줬으면 해요. 궁금한 형제들이 많아요.”

20년 전 서울남부교도소에서 찬송가를 거꾸로 들고 찬양을 불렀던 A씨, 의정부교도소 중창단 출신으로 단원들에게 손수건을 선물했던 B씨, 무기수에서 감형돼 출소한 후 노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는 C씨…. 이 권사는 이들과 음악회를 여는 꿈을 꾸고 있다.

글=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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