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한민수] 도끼 상소 기사의 사진
상소(上疏)는 왕조시대에 신하가 왕에게 글로써 자신의 뜻을 전하는 제도다. TV 사극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해 익숙한 편이다. 왕이 상소를 들어주기도 하지만 자칫 심기를 건드리면 생명을 잃거나 귀양을 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런데 아예 처음부터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임금을 강하게 압박하는 상소도 있다. 지부상소(持斧上疏)다. ‘받아들이지 않으려면 머리를 쳐 달라’는 의미로 도끼를 지니고 하는 상소다.

일반 국민도 기억할 만한 대표적인 사례는 조선 말 면암 최익현의 지부상소다. 최익현은 1876년 2월 강화도에서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서울 광화문에 도끼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조약을 강요한 일본 사신 구로다 기요타카의 목을 베라고 고종에게 상소했다. 앞서 최익현은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발행에 따른 국가 재정 파탄 등을 들어 흥선대원군의 실정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삭탈관직을 당한 바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지부상소는 1308년 고려 충선왕 때의 일이다. 관리를 감찰하는 업무를 담당하는 우탁이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충선왕이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과 눈이 맞아 사통을 하자 유교 윤리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짓이라며 상복을 입고 도끼를 든 채로 대궐에 들어가 상소문을 올렸다. 다른 신하들은 왕의 노여움을 살까 봐 거들지 못했지만 다행히 충선왕이 우탁의 상소를 받아들여 이후 선왕의 후궁을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헌종 때는 기생 출신의 사대부 첩이 남편의 허물을 고발하는 지부상소를 감행하기도 했다.

이 같은 지부상소가 그제 청와대 인근 청운효자동 주민자치센터 앞에서 재현됐다. 21개 노인·복지단체로 구성된 ‘빈곤노인 기초연금 보장을 위한 연대’가 기자회견을 하며 도끼 상소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다. 참여자들은 기초생활수급 노인들이 기초연금 혜택에서 배제되는 ‘줬다 뺏는 현실’을 바로잡아 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호소했다. 하지만 지부상소를 지켜본 이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도끼까지 들고 나왔겠느냐는 동정론이 있는 반면 지금이 왕조시대도 아닌데 상소로 해결할 문제냐는 곱지 않은 시각도 존재한다. 살벌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글=한민수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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