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경식 <11> 목회자 자녀 등에 장학금… ‘그리스도 군병’ 위한 양식

매년 교도소 방문해 간식과 예배… 재소자 “열심히 살겠습니다” 약속

[역경의 열매] 김경식 <11> 목회자 자녀 등에 장학금… ‘그리스도 군병’ 위한 양식 기사의 사진
임마누엘집 원장 김경식 목사가 지난 2월 장학금 전달식에서 한 대학생에게 장학금을 건네고 있다. 임마누엘집 제공
임마누엘집이 초창기부터 이어오고 있는 사업 중 하나는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 가정이나 목회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일이다. 도봉산 자락에 있을 때부터 나는 장애인 가정 아이들을 돌보면서 그들을 교육했다. 장애인 부모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은 비장애인들이 많다. 그런데 부모가 몸이 불편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가난하게 살게 된다. 우리는 천막 가옥에서 15명의 아이들을 교육시켰다. 거여동으로 이사한 1987년 3월부터는 연중 사업으로 정례화해 매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한번은 영세 목회자인 최은총(가명) 목사가 편지를 보내왔다. 아들인 영우(가명)가 장학금 수혜자로 선정된 것에 감사하는 내용이었다. 최 목사는 사모가 암 치료를 받고 있었고 개척 목회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장학금을 받게 돼 큰 힘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영우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꿈을 품고 도전하라”고 말했다. 장학금 전달에서 나는 길게 말하지 않는다. 그저 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편한 몸으로 살아온 나를 봐라” “여러분들도 못할 게 없다” “예수 안에서는 능치 못할 게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고난을 이겨내는 그리스도의 군병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임마누엘집이 매년 펼치는 사업 중에는 교도소 방문도 있다. 장애인 복지재단에서 무슨 교도소냐고 궁금해 할 분들도 계시겠다. 교도소 방문은 나의 어두운 과거와 관련이 있다. 젊었을 때 도박 사건에 연루돼 6개월간 목포교도소에서 감방 생활을 해봤던 경험 때문이다. 그때 재소자들이 참 어렵게 생활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죄값을 치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었다.

4년 전부터 나는 1년에 서너 차례씩 경기도 여주의 소망교도소에 간다. 임마누엘집 식구들도 같이 가서 재소자들을 위로하고 빵을 후원한다. 복지재단 산하 포천의 빵공장에서 만든 빵이다. 잔뜩 싸가지고 간다. 풍물놀이도 하고 예배도 드린다.

예배에서는 항상 내 간증을 들려준다. 그런데 재소자들은 내가 목발을 짚고 나오는 것부터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곤 이야기에 빠져든다. 예배 참석자 300명 중 250명은 눈물을 흘린다. 예배가 끝나면 재소자 중 일부는 한마디씩 한다. “출소하고 나가면 열심히 살겠습니다.”

실제로 출소한 형제들 중에는 나 때문에 변했다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동안 20명이 넘는 출소자들이 임마누엘집을 찾아왔다. 이들이 찾아오는 것은 나에게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다. 나는 교도소 집회를 가면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일종의 광고인데 임마누엘집과 교회의 주소, 전화번호를 알려준다.

“여러분 서울 지하철 5호선을 타고 거여역에서 내려 5번이나 6번 출구로 나와서 70m만 걸어오세요” 한다. 그러면 재소자들은 이를 기억했다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들이 오면 나는 교통비를 챙겨주고 점심이나 저녁을 사준다. 찾아온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교도소에 있을 때 많은 목사님들이 찾아왔지만 김 목사님 같은 분은 처음 봤어요. 목발 짚고 힘겹게 강단 올라가 말씀 전하는 것을 들으면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9월 방문이 기다리고 있다. 벌써부터 설렌다.

정리=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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