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는 자신이 설교하는 대로 살려고 발버둥 쳐야”

인천 수정성결교회 원로 추대된 조일래 목사 ‘목회 40년’

“목회자는 자신이 설교하는 대로 살려고 발버둥 쳐야” 기사의 사진
조일래 인천 수정성결교회 원로목사가 17일 교회에서 40년 목회 여정을 마무리하고 원로목사에 추대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조 목사는 특히 이은자 사모와 교회 성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인천=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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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래(70) 목사가 지난 9일 인천 수정성결교회 원로목사에 추대됐다. 이날 추대예배 한 축사자의 말처럼 ‘교회분쟁이 잦다보니 담임목사가 한 교회에서 무흠(無欠)하게 사역하다가 원로목사에 추대되는 게 뉴스가 된 시대’다. 40년 목회를 마친 그의 얼굴엔 분명 여호수아에게 바통을 넘겨준 모세의 담담함이 배어있었다.

조 목사는 은퇴를 앞두고 지난달 2박3일 동안 전 교인 ‘고별’ 부흥회를 인도했다. 지난 40년간의 목회여정을 들려주는 한편 주일성수, 십일조 등 성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풀어냈다.

조 목사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모세는 출애굽 전 과정을 회고하면서 신명기 말씀을 줬다”면서 “40년 목회를 정리하면서 모세의 심정으로 ‘꼭 이렇게 신앙생활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1977년 1월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 서울 대림동 2층 66㎡(20평)에 교회를 개척했다. 보증금 50만원 중 40만원은 빌린 돈이었다. 강대상도, 피아노도 없었다. 헌 책상을 구해 붉은색 보자기를 덮어 강대상으로 썼다. 어린 두 아들과 아내, 이렇게 교회 강단 옆 곰팡이가 피는 방에서 생활했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주님의 종이다. 하나님이 목회자로 부르셨으니 책임지실 것이다. 목사가 물질에 집착하면 실패한다. 교회는 선교와 영혼구원에 집중해야 한다’며 투명한 재정원칙을 세웠다.

조 목사는 신학을 공부하고 아내 이은자(66) 사모는 전도를 나갔다. 80년 신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100여명이 출석했다. 공무원처럼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목사 안수는 83년에 받았다. 몇 차례 중대형 교회를 맡아달라는 제안도 있었다. 그때마다 답은 같았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교회를 옮기려면 하나님의 뜻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마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교회 재정의 50∼70%를 선교비로 보내다보니 늘 어려움이 있었다. 선교비를 보낼수록 교회는 부흥했다. 그렇게 부흥을 경험한 조 목사에게 목회원리를 물어봤다.

“하루에 2시간 기도하고 3시간 성경연구와 설교준비를 하고 4시간 심방하면 목회가 안 될 수 없어요. 목사는 본인이 설교하는 대로 살려고 발버둥을 쳐야 합니다. 그래야 교인도 알고 하나님도 아십니다. 그때부터 자신도, 교회도 변화가 일어나죠. 목회자가 그렇게 노력하는데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어요?”

조 목사는 소명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목회자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소명도 받아야 한다. 만약 하나님을 확실히 만나지 못한다면 자신이 믿지도 않는 설교를 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면 설교에 힘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부산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조 목사는 2001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교역자공제회가 연금지급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구원투수로 나서 정상궤도에 올려놨다. 2011년 기성 부총회장 선거 때는 1차 선거에서 18표 차가 났지만 교단 화합을 위해 용퇴하는 결단도 내렸다. 2013년 총회장을 지낸 뒤 2015년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으로 섬길 때는 ‘턴업(Turn-up)’ 운동을 전개해 한국교회의 위상 제고에도 힘썼다.

그는 올해 말까지 다른 교회에 출석할 예정이다. 후임 이성준 목사의 지도력이 안착될 때까지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조 목사는 “앞으로 담임목사와 선임장로의 의견 말고는 듣지 않겠다고 당회에서 공언했다”면서 “담임목사 중심으로 교회가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 후 그는 기독교적 가치를 사회에 적용하기 위해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기독교 싱크탱크인 한국사회발전연구원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 18:1) 조 목사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여기에 목회 40년의 원동력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 목사 선교 사역 모델은
언제나 재정 부족했지만 선교비가 최우선… 총 200억원 지원

조일래 수정성결교회 원로목사는 교회설립 초기부터 재정의 50%를 선교비로 사용하는 선교지향적 교회를 추구해왔다. 1977년 1월 서울 대림동에 교회를 개척하고 6개월 만에 강원도 평창군의 한 농촌교회에 첫 선교비를 전달했다. ‘먹을 게 없을 때부터 선교비를 내놓을 수 있어야 교회가 성장해도 과감하게 선교할 수 있다’며 앞뒤 재지 않고 농어촌교회 선교비로 보낸 것이다. 몇 년 뒤 ‘이웃에 복음을, 농어촌에 선교비를, 온 세계에 선교사를’이라는 표어를 만들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는 86년 1차 교회 건축 후 재정이 어려워졌을 때도 선교비를 삭감하지 않았다. ‘이러다 교회가 빚에 떠내려 간다’며 성도들이 말릴 때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입니다. 세계선교기지가 빚이 있다고 선교를 중단하진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선교비 삭감을 요구한 성도들이 입을 열었다. “목사님, 교회일은 세상일과 다르네요.”

그가 40년간 목회하면서 교회를 통해 지원한 선교비만 약 200억원이다. 교회는 현재 파송선교사 19가구, 협력 선교사 8가구를 돕고 있다. 필리핀에 7개, 미국 5개, 네팔 태국 멕시코 캄보디아 러시아 베트남 인도에 각각 1개의 교회를 개척했다. 네팔에는 도티수정병원과 도티수정영재학교를 세웠다.

조 목사가 추구해 온 선교모델은 필리핀에서 찾을 수 있다. 교회는 지난 6월 필리핀 마닐라에 교회와 게스트하우스 등을 갖춘 건물면적 660㎡(200평)의 수정국제선교센터를 건립했다. 예배와 훈련, 상담이 가능한 센터건립은 1993년 수정성결교회에서 시작한 외국인 노동자 사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 훈련받은 노동자들이 필리핀으로 돌아와 신앙공동체를 형성했고 수정성결교회의 도움으로 선교센터를 건립했다.

이곳에서 훈련받은 현지인은 다시 외국으로 파송되며 필리핀 복음화에도 나선다. 선교의 자립적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당분간 백영모 선교사가 감독하지만 수정성결교회에서 외국인 노동자 사역을 하던 제시 아세 목사 등에게 리더십을 이양할 예정이다.

조 목사는 국내선교도 활발하게 전개했다. 수정성결교회는 지난 8일 설립한 일산수정교회 등 20개 지교회를 두고 있으며 13개 미자립교회를 돕고 있다. 한국대학생선교회와 한국어린이전도협회 등 28개 기관을 돕는다.

조 목사는 “선교비를 드린 뒤 음식 살 돈마저 없을 때도 하나님께 불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주님은 내가 굶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며 “하나님은 원하신다면 까마귀를 통해서라도 먹이시는 분이다. 그런 하나님을 믿는 게 믿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인천=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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