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신앙] “하나님 인도대로 따르는 것이 목표요 비전”

빵·커피 프랜차이즈 ‘브레든’ 믿음으로 일군 전용희 장로

[일과 신앙] “하나님 인도대로 따르는 것이 목표요 비전” 기사의 사진
전용희 ‘브레든’ 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비전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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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전 120만원으로 중국 보따리상을 시작해 지금은 중국내 30여개 빵과 커피 프랜차이즈 매장을 운영하는 크리스천이 있다. 중국 웨이하이(威海) 칭다오(靑島) 난징(南京) 베이징(北京) 톈진(天津) 다롄(大連) 등에 매장이 있고 최근에는 퓨전레스토랑 사업도 시작했다. ‘브레든(BREAD’N)’ 대표 전용희(48·중국 위해한인교회) 장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전도집회 간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그를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빌딩에서 만났다. 먼저 사업가로 성공한 비결을 묻자 “주님이 다 하신 것”이라고 했다. “공중파 방송국에서도 묻길래 똑같이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런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해 달라고 하더군요. 그게 사실인데 무슨 이야기를 더 하겠습니까.”

전 장로의 사업은 ‘눈물의 단팥빵’에서 시작됐다. 12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폐 질환을 앓던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그를 낳다가 임신중독으로 한쪽 눈을 실명했다.

그는 4형제 중 맏이였다. 돈을 벌기 위해 중학교를 자퇴하고 충남 부여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중국음식점에서 자장면 배달일을 하며 첫 월급 3만원을 받았다. 그걸로 어머니 내복과 어린 동생들을 위해 단팥빵을 샀다. 어머니에게 빵을 건넸다.

어머니는 그의 손을 보고 눈물을 쏟았다. 전 장로의 손은 영하 20도 날씨에 퉁퉁 붓고 피가 나 있었다. “어머니 괜찮아요. 나중에 빵집 사장이 될게요. 그러면 우리 단팥빵 실컷 먹을 수 있잖아요.” 전 대표는 “그때는 몰랐지만 그 말은 지금을 예견한 선포였다”고 했다.

중국이 눈에 보였다. 어느 날 지하철 1호선을 타고 동인천역까지 갔다가 부두에 나가보니 큰 배에서 사람들이 쏟아졌다. 중국 보따리상들이었다. “나도 저거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얘기를 꺼냈더니 돈을 빌려 120만원을 쥐어줬다. 그는 이 돈과 성경책을 들고 중국으로 향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던 전 장로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고시원에서 성경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보따리상은 꽤 잘됐다. 6개월 만에 중국 웨이하이에 창고를 얻었다. 나무판자에 스프레이로 ‘서울상회’라고 쓰고 한국인들에게 물건을 팔았다. 이어 참기름 공장, 식당, 양어장 사업 등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한창 사업에 빠져있던 무렵, 출석하던 교회의 성도가 사온 단팥빵을 먹고 옛 기억이 떠올랐다. 2년 뒤 ‘벧엘 베이커리’라는 빵집을 냈다. 하지만 4년 만에 폐업 위기에 처했다. 주일성수가 문제였다.

“중국 사람들은 외식을 많이 해요. 주일에는 다들 밥을 사먹어요. 그런데 우리 빵집이 주일에 쉬니까 망한 줄 알아요. 평일에도 안 오더라고요.”

폐업을 놓고 고민할 때 민주당 국회의원인 손혜원 당시 크로스포인트 대표를 만났다. 한국기독실업인회에서 알게 된 손 의원은 그의 빵을 먹어 보고 “맛있다. 빵만 팔지 말고 커피도 같이 팔라”고 했다. 1∼2년 안에 중국이 세계 커피 소비 1위국이 될 거라고 했다. 2009년 빵과 커피를 같이 파는 브레든을 오픈했다.

처음에는 ‘원 플러스 원’ 전략을 썼다. 빵을 사면 커피를 줬다. 그런 식으로 커피 맛을 들였다. 3∼4개월 하자 고정 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

전 대표는 사업에서건 인생에서건 답은 간단하고 했다. “잠언 16장 9절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는 말씀에서 ‘사람’ 대신 자기 이름을 넣으면 됩니다.”

사업 목표는 “브레든 100호점을 내는 것”이다. “이것도 교만일 수 있어요. 그냥 하나님 인도하시는 대로 그냥 따라가는 것 자체가 목표요 비전입니다.” 전 장로는 말을 마친 뒤 전도집회로 향했다.

글=전병선 기자 junbs@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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