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산책] 문학과 미술의 행복한 만남 기사의 사진
김선두 ‘이제 우리들의 잔을’. 2011
황토빛의 질박한 화면에 검은 먹선들이 힘차게 뻗어나간다. 사방으로 뻗은 선들 사이로 작은 점들이 은하수처럼 흩어지고 있다.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굵은 붓을 자유롭게 휘두른 이 추상화는 화가 김선두(59)가 장지에 먹으로 그린 그림이다. 김선두는 우리 문학계의 큰 별인 이청준(1939∼2008)의 소설 ‘이제 우리들의 잔을’의 표지를 위해 이 그림을 그렸다. 남도의 한 암자로 모여든 소설 속 여러 인물들의 욕망을 화가는 폭죽 형상으로 표현했다. 잔뜩 압축되었다가 하늘을 현란하게 물들인 뒤 이내 사그라드는 폭죽이야말로 인간 욕망의 허망함과 맞닿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소설 ‘남한산성’의 표지화, 영화 ‘취화선’의 그림 작업 등으로 유명한 김선두는 이청준과도 30여년을 함께했다. 고향(전남 장흥) 선배이자, 예술적 스승이었던 이청준과 남도기행을 하며 화문집을 냈는가 하면, 작가의 여러 책의 표지화를 그렸다. 2010년부터 발간을 시작해 최근 총 34권으로 완간된 ‘이청준 전집’(문학과 지성사)의 표지화도 모두 그렸다.

김선두는 “이청준 선생은 나의 그림세계를 밖으로 확장시켜 주었다”며 “문학과 그림의 만남에서 그림이 글에 종속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밝혔다. 세월이 흐를수록 선배와의 동행이 그리워진다는 화가는 표지화 등 120점의 그림을 향후 건립될 이청준문학관을 위해 기념사업회에 기증했다. 김선두가 그린 ‘이청준 전집’의 표지화는 복합문화공간 에무에서 다음달 8일까지 전시된다.

이영란(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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