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사과의 정석 기사의 사진
밧단 아람의 외삼촌 집에서 죽도록 일해 모은 재산을 갖고 베델로 돌아가는 길. 야곱은 마하나임에 이르러 에돔 벌판 세일에 사는 에서에게 심부름꾼을 보낸다. “우리 주인님이 너그럽게 봐달라고 하십니다.” 세월이 약이라 했으니 그 사이 형의 분노도 풀리지 않았을까. 자그마치 20여년이 흘렀으니 이제 잊을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러나 계산착오였다. 심부름꾼들이 돌아와서 “지금 부하 400명을 거느리고 주인어른을 치려고 이리 오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세월과 무관하게 문신처럼 남는 상처가 있다. 에서의 경우 ‘팥죽 한 그릇’이 그랬다. 그 날 야곱이 내민 팥죽 한 그릇을 덥석 받아먹지만 않았어도…. 그가 뺏긴 건 ‘장자권’만이 아니었다. 인생 전부였다. 인간에 대한, 신에 대한 믿음마저 송두리째 무너져 버렸다. 자신은 수치와 굴욕, 원망과 절망에 빠져 힘들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는 아랑곳없이 부자가 돼 나타났다는 사실을 용납하기 어려웠다.

에서의 화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는 소식에 야곱은 비로소 겁이 났다. 그저 사과 몇 마디로 형의 분노가 풀리기를 바라다니 이 얼마나 어리석고 교만한 발상이었던가. 게다가 자기가 직접 나선 것도 아니고 심부름꾼을 보내 대리사과를 했으니 형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셈이 아닌가. 야곱은 제대로 사과하기로 마음먹는다. 용서는 그 다음이다. 죽이든 살리든 형에게 달린 일이다.

사과의 표현으로 야곱이 내놓은 ‘배상’의 규모가 만만치 않다. ‘암염소 200마리와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와 숫양 20마리, 낙타 30마리와 거기에 딸린 새끼들, 암소 40마리와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와 새끼 나귀 10마리.’ 그것도 모자라 야곱은 에서를 만나자마자 일곱 번이나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사과했다. 이쯤 되면 그의 진정성이 통하지 않을 리 없다. 에서도 더 이상 칼을 휘두르지 않고 두 팔을 벌려 아우를 끌어안았다.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졸속으로 단행한 ‘한·일 위안부 합의’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곱씹어보면 ‘합의’라는 용어 자체가 마뜩찮다. 이건 나라와 나라 사이에 종잇장 하나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다. 쌈짓돈 몇 푼으로 갈음할 일도 아니다. 명색이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하라는 것이다. 문명이 개화했다는 20세기에 스스로 문명국을 자처한 일본제국이 조선에게 가한, 또 일본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의 화신인 일본군이 조선의 꽃다운 소녀들에게 가한 야만스러운 범죄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라는 것이다.

김학순 할머니가 1991년 처음으로 자신이 당했던 일을 세상에 알렸을 때, 남들이 알세라 전전긍긍 가슴속 깊이 숨겨온 상처를 칠순이 다 돼 만천하에 드러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목적은 단 하나였다. 오로지 사과였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비는 것이었다. 그게 과한 요구였을까. 하기야 강제징용의 현장이었던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성공한 일본이 아니던가. 위안부 합의에다 감히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단서까지 붙였을 정도이니 그 뻔뻔함을 더 말해 무엇 할까.

8월 14일은 ‘세계 위안부의 날’이다. 김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로서 처음으로 피해사실을 증언한 날을 기려 정해졌다. 위안부라는 용어 자체가 대단히 모욕스럽지만 언어는 다만 약속에 불과하므로 그냥 넘어간다 치자. 그러나 위안부 합의만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피해 할머니들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짓에 가담한 사람들을 역사는 도저히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즉 두 눈을 부릅뜨고 깨어있어야 한다. 이육사 시인의 예언처럼 지금은 바야흐로 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이 아닌가.

구미정(숭실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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