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요셉의 구덩이 기사의 사진
구약성서 창세기 37장에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던져진 요셉의 이야기가 나온다. 구덩이는 세상과 차단된 곳, 희망을 가질 수 없는 곳이다. 요셉은 캄캄한 그곳에서 죽음과 같은 공포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곳은 결과적으로 죽음의 구덩이가 아니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 40:2) 다윗의 고백처럼 요셉의 꿈을 실현시키는 발판이 됐다.

최근 북한에 735일간 억류됐던 케네스 배 선교사를 만났을 때 이 ‘요셉의 구덩이’를 떠올렸다. 735일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북한이라는 깊은 구덩이 속에서 그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그리고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됐다.

케네스 배 선교사는 북한과 세상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는 소명으로 네이션스 투어스라는 관광회사를 만들어 17번이나 북한을 왕래하다 2012년 11월 3일, 18번째 방북에서 일이 터져 억류됐다. 북한은 그가 자기들의 정부를 전복하려 했다는 상투적인 죄목으로 신문하고 기소했다. 그는 형식적 재판 끝에 유죄 판결로 15년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노동교화소에서 강제 노역으로 3개월 만에 27㎏이 줄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처음엔 별일 없이 북한을 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재판을 받으면서도 몇 개월 내에는 끝날 것으로 여겼지만 그는 무려 735일간이나 북한에서 나오지 못함으로써 한국전쟁 이후 가장 오랫동안 억류된 미국인으로 기록됐다.

칠흑같이 어두운 구덩이에 빠진 그 시간, 아마도 그는 버려진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가 억류 중 가장 듣기 힘들었던 말은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아. 아무도 당신을 기억하지 않아. 당신은 집에 돌아갈 수 없어”란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다운 마음 자세를 잃지 않았다. “내 주 예수 계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는 놀라운 고백을 했다. 교화소 감방과 병원을 ‘기도의 집’으로 삼았다. 홀로 남겨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은 처참하고 외로운 신세로 여겨졌으나 사람들은 그를 기억했고, 석방을 위해 실제로 행동했다. 그의 억류는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켜 가족과 친구들은 물론 일면식 없는 낯선 사람들과 미국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그의 석방을 촉구했다. 놀라운 연대였다. 그의 석방은 그 같은 국제적 연대와 노력의 결과였다. 이런 결과는 ‘우연’이 아니라 ‘섭리’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았다.

그에게 735일의 북한 억류라는 구덩이가 없었다면 북한을 향한 사랑이 지금처럼 뜨거울 수 없을 것이다. 요셉이 자신을 구덩이에 넣었던 형들을 다시 만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말했듯, 이제 그도 과거엔 상상도 할 수 없는 많은 사람과 단체를 만나면서 북한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 통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서빙라이프라는 북한 인권단체의 공동대표로 헌신하고 있는 그는 이제 하나님이 결코 잊지 않으신 북한과 북한사람들을 잊지 말기를 소망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구덩이 속의 요셉’처럼 절망의 구덩이, 슬픔의 구덩이, 실패의 구덩이, 불안과 염려의 구덩이, 고통의 구덩이에 갇힐 때가 있다. 헤어날 수 없는 파국에 내몰려 스스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지경까지 이르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구덩이는 인생의 무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곳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당신의 백성을 결코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혼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말이다. 내가 혼자인 것처럼 느껴지고 잊혔다고 생각된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잊으신 적이 없다. 여전히 그분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 그분은 분명한 계획을 세워 놓고 계시고 그분의 시간표대로 아름답게 이루어 내신다. 우린 그것을 기억하면 된다. 우린 잊혀진 존재가 아니다.

이지현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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