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유영만] ‘빠듯한’ 하루와 ‘뿌듯한’ 하루 기사의 사진
새벽 5시30분 알람이 울린다. 어서 일어나 운동하러 가라는 소리다. 즉시 알람을 끄고 무의식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대강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새벽길이지만 모두들 어딘가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한다. 나도 그 틈바구니에서 질주본능을 자제하고 정상 속도로 달려 나간다. 30여분 운전하면 내가 매일 아침 운동하는 피트니스센터에 도착한다. 우선 유산소운동을 하기 위해 러닝머신 위를 달리거나 자전거를 40분 정도 탄다. 이미 땀이 범벅이 되어 상쾌해진 몸이 유쾌한 마음을 만들고 명쾌한 정신까지 만든다. 유산소운동을 마치고 잠시 쉬었다 바로 스쿼트를 시작한다. 매일 한 번에 80개씩 하다가 책 100권 출간 기념하는 그날을 위해 100개씩 했다. 요즘은 고뇌와 번뇌를 잊기 위해 108개를 한꺼번에 한다. 108개를 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하지만 앉아서 잠시 쉬는 동안 무한한 성취감을 느낀다. 육체노동과 땀이 주는 대가다.

근육운동을 시작한다. 팔과 다리, 상체와 하체 근육운동을 30분 정도 한다. 나이 들수록 근육이 없으면 근력(筋力)도 없어진다. 근력이 있어야 끝까지 버티며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근력(根力)도 생긴다. 근육운동 후에 다가오는 팽창감과 땀이 주는 쾌감이 온몸을 휘감는다. 땀은 물을 만날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행복한 샤워를 한다. 땀에 젖은 몸에 닿는 물의 촉감이 시원함으로 다가온다.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운동하면서 힘든 몸과 맘을 잠시 내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긴장과 이완, 다이내믹과 고요함, 뜨거움과 차가움 사이를 오가며 몸과 맘이 열린다. 운동을 마치고 학교에 도착하면 8시 전후가 된다. 연구실 문을 여는 순간 수많은 책이 어김없이 아우성을 친다. 오늘도 자기 먼저 꺼내서 읽어달라고.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저마다의 주장을 소리 없이 외친다. 자신과 짧은 시간만이라도 대화를 나누자고.

커피 한잔 뽑아서 책상에 앉는다. 컴퓨터를 켜고 급한 메일을 보고 답장을 한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점검하고 댓글로 달린 SNS 친구들의 마음을 살핀다. 댓글에도 저마다의 사연과 마음이 담겨 있다. 일과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시간, 어제 쓰던 책이나 칼럼의 폴더를 찾아가 파일을 연다. 잠시 끊긴 생각의 흐름을 이어본다. 책을 읽고 글을 쓰다 막히면 다시 관련된 글을 읽고 쓴다. 쓰다가 읽고 읽다가 쓴다. 쓰면 쓰임이 달라지고 쓰지 않으면 쓰러진다는 각오로 매일 글을 쓴다. 실패작과 졸작이 나오다 어느 정도 수준에서 만족하는 작품이 탄생한다. 여유로운 시간 속에서 ‘뿌듯한’ 하루가 시작된다.

때로는 늦은 밤까지 약속이 이어지고 과음을 하기도 한다. 평소보다 늦게 잠자리에 든다. 알람을 평소와 같이 맞추거나 다음 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아예 8시 정도로 맞추기도 한다. 어김없이 알람이 울리지만 무의식적으로 알람을 끄고 잠시 생각해본다. 오늘은 조금만 더 잘까, 아니면 지금 그냥 일어날까를 생각하며 뒤척인다. 일어날지, 조금 더 잘지 갈등하는 두 의견 사이에서 고민을 거듭한다. 그 사이 나도 모르게 다시 잠에 빠져든다. 그렇게 잠에 빠져 자다가 뒤늦게 일어나는 날, 허겁지겁 일어나 평소 가던 곳으로 운동하러 가지 않고 아파트 1층에 있는 피트니스센터로 향한다. 어차피 늦은 출발, 아예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후회가 마음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다. 운동이 끝나고 간단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온다. ‘고속도로’는 요일에 관계없이 언제나 ‘정체도로’다. 늦게 나온 죄다. 학교에 도착하면 11시가 넘는다. 잠깐 잠을 잔 사이 오전 시간이 거의 날아갔다. 연구실 문을 열자 책들이 아우성을 친다. 왜 이렇게 늦게 나오느냐고. 커피 한잔을 뽑아서 책상에 앉는다. 뿌듯하게 시작한 하루와 일상이 비슷하게 시작된다. 하지만 출발이 늦어서 평소와는 다르게 여유롭지 못하고 ‘빠듯한’ 기분이다. 이어지는 일정으로 내 몸과 맘이 던져진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고(故) 신영복 교수님의 ‘처음처럼’에 나오는 말이다. 허겁지겁 잠자리에 든 어젯밤이 오늘 아침을 빠듯하게 만든다. 하루를 성찰하며 여유롭게 잠든 밤이 오늘 아침을 뿌듯하게 만든다. 빠듯한 하루와 뿌듯한 하루 사이에는 작은 차이가 살아간다. 그 사이에 살아가는 작은 차이의 반복이 어제와 다른 나를 만든다. 당신은 오늘 빠듯한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아니면 뿌듯한 하루를 시작하셨나요? 빠듯한 하루와 뿌듯한 하루, 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가 바로 당신을 만든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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