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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곽금주] 새로운 여행지의 시간 흐름

[청사초롱-곽금주] 새로운 여행지의 시간 흐름 기사의 사진
본격적인 여름휴가 기간이다. 7월 말부터 8월 초에 전체 여름 휴가객의 60% 이상이 몰릴 것이라고 한다. 이동인구는 평상시와 비교해 47%나 증가돼 지난해보다 더 많다.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탈출은 짜릿한 즐거움을 준다. 휴가에 임하는 자세가 어떻든 상관없이 휴가를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활력이 돈다.

휴가철이 되면 사람들은 어디로 여행을 떠날지 계획을 짜면서 설렌다. 휴가지를 고를 때 늘 가던 곳을 가는 사람도 있고, 매번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사람도 있다. 또 그냥 리조트에서 충분히 자고 쉬는 것을 원하는 이도 있고, 뭔가 이색적인 체험을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언제 그날이 올지 날짜를 세며 고대하고 그 전날 잠까지 설치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여행의 마지막 날이 되면 ‘아,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갔을까. 조금이라도 덜 자고 더 많이 둘러볼 걸’이라는 생각으로 아쉬워하게 마련이다. 객관적인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 느리게 또는 더 빠르게 인지하는 속성이 있다.

인간의 뇌는 지속적인 동일 자극에 대응하는 효율적인 체계를 만들어 최대한 간편하게 정보를 처리한다. 뇌가 인식하고 처리한 사건의 수와 시간이 비례해 계산된다. 한 개의 정보가 주어진 시간 단위에 처리됐는데 그 시간 안에 두 개의 정보가 처리되게 되면 도리어 시간이 더 걸렸다고 판단한다. 예를 들어 0.2초 안에 한 개의 정보가 처리됐는데 주의를 딴 곳으로 돌려 두 개의 정보가 0.2초에 처리될 때 뇌는 더 많은 정보를 처리했다고 생각한다. 이때 뇌는 시간의 흐름을 자신이 처리한 정보의 개수로 판단하는 것이다. 즉 평소와 다른 새로운 경험을 주어진 동일한 시간 안에 더 많이 할수록 뇌는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해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긴 시간이 흘렀다고 기억하게 된다.

우리의 일상은 반복적이고 뻔한 일과로 구성된다. 일상생활에서 지속적인 일들은 새로운 게 없으므로 무뎌지고 흥미롭게 느끼지 않게 된다. 아무것도 한 것 없이 하루가 빨리 간다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이미 익숙한 것에 대해 뇌는 자동화가 일어나서 시간 또한 빨리 가는 걸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 처음 도착한 여행지에서 보낸 시간을 기억해보자. 유적지 탐방과 길 찾기, 먹거리 여행 등 새롭고 흥미로운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정신없었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힘들고 고생도 했을 것이다. 낯선 상황에서 많은 일정으로 일상생활에서 처리했던 정보보다 많은 요소를 고려하고 처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평상시보다 시간이 느리게 갔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점차 낯선 환경에 익숙해지면 처리할 정보의 수가 감소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여행 마지막 날이 되면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고 아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돌아와서 생각하면 첫 여행지의 며칠이 늘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처음 가게 될 때 가는 길은 멀게만 느껴지고 돌아오는 길은 의외로 빠르다고 생각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치다.

매일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게 시간만 정신없이 빨리 지나간다는 느낌은 이와 매우 관련이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게 없는 익숙한 주변 환경 때문에 그리고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게 없는 안정된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날이 그날 같고, 바로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건만 지난해에 다녀온 여행은 생생히 기억나는 것, 바로 새로움에 대한 우리 뇌의 반응인 것이다.

올여름에는 거창한 여행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작은 여행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아니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떠나보는 여행도 좋을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부딪쳐 보고 행동해보고 그리고 고생해볼 때 우리 삶의 시간 흐름은 더욱 길어질 것이고 그만큼 나의 추억과 기억 또한 풍부해질 수 있으리라. 우리 인생은 그러한 기억과 추억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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